역대하 4장을 읽다 보면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놋 제단, 바다, 물두멍, 등잔대... 온통 성전 기구들의 크기와 치수, 재료들에 대한 이야기뿐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솔직히 오늘 본문 읽으면서 '이게 나랑 무슨 상관인가' 싶지 않으셨나요?
'금이 몇 달란트고 놋이 몇 규빗이다' 하는 이야기가 내 삶과 무슨 연결이 있나 싶을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은 결코 의미 없는 숫자를 나열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 기구들 하나하나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눈물겨운 사랑과 배려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딱딱한 성전 기구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마음'를 듣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흔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형식'을 무시하곤 합니다.
"마음이 중요하지, 겉치레가 뭐가 중요해?"
하지만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아주 정교한 '형식(기구)'을 요구하십니다.
왜일까요? 그 형식 안에 담아야 할 '본질'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역대하 4장에 나타난 성전 기구들은 크게 두 가지 영적 원리를 보여줍니다.
* 놋 바다, 10개의 물두멍
본문을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엄청난 크기의 '놋 바다'와 10개의 '물두멍'입니다.
2절 또 놋을 부어 바다를 만들었으니 지름이 십 규빗이요 그 모양이 둥글며 그 높이는 다섯 규빗이요 주위는 삼십 규빗 길이의 줄을 두를 만하며
이 바다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푸른 바다가 아니고...
물을 담는 통인데 워낙 커가지고 이름을 바다라고 지었다.
규모가 나오는데, 지름 십규빗 모양이 둘글고
그 높이 다섯규빗, 주위는 삼십규빛 줄을 두를 만하고...
이게 물 45,000 리터를 담을 수 있다.
제사장, 레위인들도 하나님앞에 자신의 죄를 씻어야 하는 죄인이라면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라는 것이다.
제사장 레위인이 자기를 씻는 일을 할때에 물이 부족해서 씻지 못함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와 속죄의 은혜가 어마어마하게 풍성하다. 크다는 것을 나타내준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씻기위해..피와 물을 다 쏫으셨다.
어떤 죄인이라도 십자가에서 흐르신 그 물과 피는 온 세상 사람들의 모두의 죄를 씻고도
남음이 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이 은혜의 물결이 강같이 온땅에 흘러 구원의 바다를 이루었다.
6절 또 물두멍 열 개를 만들어 다섯 개는 오른쪽에 두고 다섯 개는 왼쪽에 두어 씻게 하되 번제에 속한 물건을 거기서 씻게 하였으며 그 바다는 제사장들이 씻기 위한 것이더라
이 물두멍은 모세 때에는 성전에 들어가기 전에 제사장들의 손발을 닦기 위해 사용되었으나 지금 솔로몬 때에는 번제로 드릴 희생제물만을 깨끗이 씻어내는 용도로 용도가 바뀌었다.
솔로몬때는 바다가 제사장을 씻는 물두멍 용도를 대신하고 있다.
그런데 죄인인 자신들이 손발을 닦는 일이나 제물을 씻는 일이나 마찬가지 말이다.
왜냐면 제물은 누구를 의미하나??? 제물 드리는 사람을 대신한다.
자기가 죽어야 할 것인데 이 제물에 죄를 전가하고 내 대신 동물이 죽는거다.
제물을 깨끗이 씻는것은 드리는 사람 자신을 깨끗케 한다는 말이다.
오늘도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앞에 나가기앞서 회개하고,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깨끗케 하시며
날마다 거룩하고 성결한 삶을 살아나가시길 기도합니다.
4절 그 바다를 놋쇠 황소 열두 마리가 받쳤으니 세 마리는 북쪽을 향하였고 세 마리는 서쪽을 향하였고 세 마리는 남쪽을 향하였고 세 마리는 동쪽을 향하였으며 바다를 그 위에 놓았고 소의 엉덩이는 다 안으로 향하였으며
바다라는 기구를 열두소가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3마리씩 동서남북을 바라보고 받치고 있다.
소는 어떤 동물인가? 희생, 헌신, 순종, 충성
특이한 것은 소 12마리... 성경에서 12는 완전수다.
구약의 12지파, 신약의 12사도 = 게시록에서는 12*12*1000 하나님 백성 전체를 상징한다.
신천지는 144000 자기들만 구원받는 다고 하는데... 이 상징적인 숫자를 모른다.
무수히 많은 셀 수 없는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을 나타내는 수다.
바다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의 풍성함을 나타낸다면..
그 밑에 소 12마리는 무엇을 의미하나?
그 풍성함의 은혜를 나타내는 일은 하나님 백성들의 섬김과 순종, 헌신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속죄의 사역이 온 땅을 향해 증거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내가 받은 그 엄청난 십자가의 사랑, 복음의 종으로
우리의 사명잃지 않고
동서남북 어디로 가든지 신실한 복음의 일꾼되길 원합니다.
* 등잔대와 상
씻음 받은 자가 성소 안으로 들어가면 '금 등잔대' 10개와 '상' 10개를 마주하게 됩니다.
등잔대: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조명을 뜻합니다.
상: 하나님과의 친밀한 식탁 공동체, 즉 생명의 떡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단순히 죄만 안 짓는 상태로 머물길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빛 아래서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길 원하십니다.
하지만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과연 이 놋 바다에서 씻는다고 해서 우리 영혼의 깊은 죄악이 완전히 사라질까요?
금 등잔대 불빛이 우리 마음의 어둠을 완전히 몰아낼 수 있을까요?"
구약의 성전 기구들은 '그림자'일 뿐입니다.
이 기구들은 그 자체로 완벽한 구원을 주지 못합니다.
이 모든 기구들은 단 한 분, 누구를 가리키나?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놋 바다'이십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은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우리의 모든 죄를 씻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참 빛'이시며(등잔대),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십니다(상).
솔로몬이 만든 성전 기구들은 결국 소멸되었습니다.
바벨론 침공 때 다 부서지고 탈취당했습니다.
그러나 참된 성전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놋이나 금으로 만든 기구가 아니라, 그 실체 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도님들 오늘 본문 마지막 22절을 보세요.
또 순금으로 만든 불집게와 주발과 숟가락과 불 옮기는 그릇이며 또 성전 문 곧 지성소의 문과 내전의 문을 금으로 입혔더라
온통 금으로 입혔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이 금이 부족해서 금으로 칠하라고 하셨겠습니까?
아닙니다.
금은 귀한 것이다. 가장 귀한 '최선'담아 섬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를 그 기구에 담으라는 겁니다.“
오늘 우리 삶에서 회복해야 할 두 가지 기구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물두멍'은 안녕하십니까?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비극은 '회개'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씻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려 합니다.
매일 아침 말씀의 거울 앞에서 여러분의 죄를 씻어내는 '영적 세탁'의 시간이 있습니까?
십자가 앞에 여러분의 허물을 내놓으십시오.
여러분의 '등잔대'는 타오르고 있습니까?
세상이 어둡다고 욕하기 전에, 내 안의 등잔대에 성령의 기름이 떨어지지는 않았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내 안에 말씀의 빛이 없으니 자꾸만 세상적인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성전의 모든 기구를 ' 하나님의 성전에서 할 일을 마쳤다'(4:11)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맡겨진 사명을 완수한 솔로몬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나 더 큰 완성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외치신 "다 이루었다"입니다.
우리가 오늘 거룩하게 살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모든 성전의 기능을 십자가에서 완성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의 바다에 여러분을 던지십시오. 그 빛 되신 주님과 함께 오늘 하루를 걸어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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