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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7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대하 6:1-11)
 
[1월 17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대하 6:1-11)
2026-01-16 17:00:00
최종운
조회수   13

우리는 지난주 5장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처럼 성전에 가득 찼던

그 압도적인 장면을 보았습니다.

오늘 6장은 그 영광의 구름 앞에서

솔로몬이 백성들을 향해 돌아서서 첫 번째로 선포하는 장면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살면서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일까요?

평생의 숙원 사업을 딱 끝냈을 때 아닙니까?

솔로몬은 지금 자기 인생의 최고 정점에 서 있습니다.

성전 다 지었죠, 하나님의 영광도 임했죠. 소히 이제 어깨에 힘 좀 줘도 되는 타이밍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솔로몬의 태도가 참 묘합니다.

자기의 업적을 자랑을 하는 게 아니라,

그의 말에는 '하나님의 이름''하나님의 약속'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뭔가를 이루면 그 결과물에 집착합니다.

'내가 이만큼 했다, 내가 이 집을 샀다, 내가 이 직급에 올랐다.'

그런데 여러분, 그런 성취 뒤에 오는 공허함을 아십니까?

건물을 세웠는데 그 안에 계셔야 할 하나님이 안 계시면 그건 그냥 돌덩어리일 뿐입니다.

 

오늘 솔로몬의 고백을 통해,

우리 인생의 화려한 성취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11절 사이에는 중요한 영적 흐름이 있습니다.

 

캄캄한 데 계시겠다 하셨사오나 (1-2)

1-2절 그 때에 솔로몬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캄캄한 데 계시겠다 말씀하셨사오나

내가 주를 위하여 거하실 성전을 건축하였사오니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로소이다 하고

 

솔로몬은 하나님이 '캄캄한 데' 계시겠다고 말씀하셨음을 언급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초월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낮과 밤이 상관없이, 시간과 공간에 제한받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드러낸다.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건물 안에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2절에서 솔로몬은 "주를 위하여 거하실 성전을 건축하였사오니"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오해는 "내가 하나님을 위해 대단한 집을 지어드렸으니,

이제 하나님은 여기 계셔야 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종교거든요.

 

종교는 내가 있는곳으로 신을 맞추려는 시도다.

사찰을 만들고, 불상을 놓고, 온갖 우상을 갖다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종교는 인간이 쌓은 성취로 신을 특정 장소와 틀에 가두려는 교만한 시도이며,

그 자신들의 정성으로 나의 만족을 얻으려는 자기 중심적인 노력입니다.

 

복음은 뭐냐?

무한하신 하나님이 먼지보다 작은 우리를 만나기 위해

스스로를 제한하여 내려오시는 '낮아지심이다.

우리의 수준으로 낮아져 직접 찾아오신 창조주의 압도적인 은혜를 의미합니다.

 

결국 종교는 인간이 위로 올라가려는 몸부림이고,

복음은 하나님이 아래로 내려오신 사건입니다.

 

주권적인 선택과 이름 (5-6)

5절 내가 내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내 이름을 둘 만한 집을 건축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서 아무 성읍도 택하지 아니하였으며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될 사람을 아무도 택하지 아니하였더니

6절 예루살렘을 택하여 내 이름을 거기 두고 또 다윗을 택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노라 하신지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어떤 성읍도 택하지 않으셨다가,

오직 '예루살렘'을 택하고 '다윗'을 택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조건 없는 선택'의 복음을 보여줍니다.

예루살렘이 다른 도시보다 거룩해서가 아닙니다.

다윗이 다른 왕보다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냥 사랑하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선택의 근거가 인간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의지에 있다는 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우리의 어떠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인한 선택입니다.

 

내 아버지 다윗의 마음에 있던 것 (7-9)

아시다싶이 다윗은 자신이 성전을 짓고 싶어 했지만 하나님께 거절당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마음을 '귀하게' 보셨습니다.

성전은 다윗의 열정으로 시작된 것 같지만,

결국 하나님의 약속(언약)에 의해 솔로몬의 손에서 완성됩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 단어는 '성취'입니다.

 

4절과 10절에서 솔로몬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셨도다"라고 반복합니다.

4절 여호와께서 그의 입으로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을 이제 그의 손으로 이루셨도다

 

10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셨도다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내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일어나 이스라엘 왕위에 앉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고

 

솔로몬은 지금 손에 잡히는 건물(성전)을 보며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성전은 결국 무너졌습니다.

왜일까요? 솔로몬의 성전은 완벽한 성취가 아니라 '예고편'이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지어 하나님을 모시려 했지만, 그 성전도 불완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예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 '장막(성전)'을 치러 오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솔로몬이 성전 완공 후 "이루어졌다"고 선포했다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시며 테텔레스타이 "다 이루었다"

선포하셨습니다.

 

솔로몬의 성취는 인간의 불순종으로 깨질 수 있는 성취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성취는 그 어떤 세력도 무너뜨릴 수 없는 영원한 성취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솔로몬을 통해 부분적으로 보여주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마침표를 찍으셨습니다.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하나님은 다윗에게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라고 하십니다.

실제로 짓는 것은 솔로몬이었지만,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을 이미 받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꿈이 당장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열망을 품고 있다면,

하나님은 이미 여러분을 '성공한 인생'으로 보고 계십니다.

결과에 집착하는 종교 생활을 멈추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그 자체를 즐거워하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두기 위해 예루살렘을 택하셨습니다.

오늘날 그 예루살렘은 어디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교회'이며, 성령이 거하시는 '여러분의 몸'입니다.

 

우리는 자꾸 밖에서 답을 찾으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우리 공동체 안에 하나님의 이름이 있다는 이 정체성을 회복할 때

리 삶의 무너진 성벽이 다시 세워질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 여러분의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주님이 당신의 손으로 직접 이루실 겁니다.

솔로몬처럼 그저 그 약속의 성취를 목도하며 '주님, 주님이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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