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수 이후를 기록하고 있는 창세기 8장은 창세기 1장을 반복하는 제2의 창조나 다름없습니다.
창세기의 저자는 그 주제를 반복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홍수의 영향을 받지 않는 우주의 영역인 창조 첫째 날의 빛, 넷째 날의 해달별을 제외한
나머지 날들과 대홍수 이후의 기록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1절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2절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똑같은 ‘땅’이라는 표현이 창조 둘째 날에 등장합니다.
1:6-7에 걸쳐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던 혼돈을 가르시고
하늘과 땅과 물을 위와 아래로 배열하십니다.
땅이라는 단어가 성경에 한두 개가 나오느냐, 반문하실 수 있으시겠지만
앞으로 전개되는 순서를 보면 신기한 점들이 발견됩니다.
5절 물이 점점 줄어들어...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창조 셋째 날을 생각해 봅시다.
1:9에서는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8:5에서도 물이 줄어들고 산들의 봉우리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17절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 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창조 다섯째 날에는 하나님께서 1:20에서 ‘새가 날으라’ 명령하시고
창조 여섯째 날에는 24절에서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창조하십니다.
8:17에서 그대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9:6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7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1:27-28에 걸쳐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말씀하시는 창조 기사의 절정, 인간 창조에 해당하는 부분도
대홍수를 마무리하는 지점에서 고스란히 반복됩니다.
어떻습니까? 홍수 이후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재정비하시는 이 모든 작업은 제2의 창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모든 회복, 이 모든 창조의 근원은 1절에서 시작됩니다.
1절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우리말로 ‘기억한다’로 번역된 이 단어는
(이전 개역 한글 성경에서는 ‘권념하다’라는 조금 어려운 말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출애굽의 놀라운 역사를 앞두고도 다시 등장합니다.
(출 2:25) 하나님께서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혼돈에서 생명으로, 억압에서 자유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역사의 시작에는
언제나 ‘기억’이 있습니다. 이 기억은 인간처럼 과거를 회상하는 개념이라기보다는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신다는 ‘언약’의 표현에 가깝습니다.
인간 상호 간의 언약이라면 서로가 서로에 대해 의무를 이행해야지만 약속이 성립하겠으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은 오로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으로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신학자 칼뱅은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을 지옥 불에 넣으신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라는 무시무시한 전제를 합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 전제에 우리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인간은 여전히 죄인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심판받아 마땅한 존재가 심판을 받는다는데,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21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사실 무엇이 바뀐 것이 아닙니다. 이런 무서운 심판을 겪고도 사람의 마음은 여전히 악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차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받으십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언약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위로부터 개입하십니다. 창조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
그리고 출애굽과 사사시대, 왕조시대와 포로시대를 넘어 예수님과 사도들의 시대까지,
하나님은 사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셔도 그만이신데 끊임없이 개입하십니다. 구원하십니다.
그 놀라운 기억, 언약, 약속, 구원의 원동력은 바로 사랑입니다.
1장에서 우리가 본 창조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과 인간을 만드시고 난 다음에 아주 만족스러워하셨습니다.
사랑으로 충만해서 어쩔 줄 몰라 하시는 모습이 창세기 1장과 2장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충만한 동력으로서의 사랑입니다.
오늘 우리가 1절에서 읽은 그 기억은 언약이며 그 언약의 동력으로서의 사랑입니다.
내 삶을 사랑으로 창조하시고, 사랑으로 질서를 부여하십니다.
사랑으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동력으로 충만하신데,
우리 중에는 삶의 동력이 떨어져서 어려우신 분들이 있습니까?
내가 내 가족들을 왜 섬겨야 하는지, 왜 이 공부를 해야 하는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왜 이 교회와 교우들을 섬겨야 하는지, 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유도 모르겠고 힘이 올라오지 않는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기억하셨다, 먼저 언약하셨다, 먼저 약속을 이루셨다,
먼저 구원하셨다, 조건 없이 사랑하셨다는 사실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사랑은 능력입니다. 사랑으로 충만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나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랑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그 사랑이 내 삶을 새롭게 창조하고, 새로운 질서를 부여할 줄로 믿습니다.
| 번호 | 제목 | 설교자 | 등록일 | 조회수 | 첨부 파일 |
|---|---|---|---|---|---|
| 2935 | [4월 4일] 고난주간특별새벽기도회 (6일) | 최종운 | 2026-04-04 | 8 | |
| 2934 | [4월 3일] 고난주간특별새벽기도회 (5일) | 최종운 | 2026-04-03 | 8 | |
| 2933 | [4월 2일] 고난주간특별새벽기도회 (4일) | 최종운 | 2026-04-02 | 11 | |
| 2932 | [4월 1일] 고난주간특별새벽기도회 (3일) | 최종운 | 2026-04-01 | 12 | |
| 2931 | [3월 31일] 고난주간특별새벽기도회 (2일) | 최종운 | 2026-03-31 | 15 | |
| 2930 | [3월 30일] 고난주간특별새벽기도회 (1일) | 최종운 | 2026-03-30 | 22 | |
| 2929 | [3월 28일]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창 8:1-22) | 손병호 | 2026-03-26 | 22 | |
| 2928 | [3월 27일]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시고 문을 닫으시니라 (창 7:1-24) | 손병호 | 2026-03-26 | 32 | |
| 2927 | [3월 26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 6:1-22) | 손병호 | 2026-03-25 | 28 | |
| 2926 | [3월 25일] 다시 예배를 쌓아가시는 하나님 (창 5:1-32) | 전소리 | 2026-03-25 | 27 | |
| 2925 | [3월 24일] 예배에 대한 가인의 착각 (창 4:1-24) | 전소리 | 2026-03-24 | 23 | |
| 2924 | [3월 23일] 관계의 파괴자(뱀) vs 구원의 창조주(하나님) (창 3:1-27) | 전소리 | 2026-03-22 | 23 | |
| 2923 | [3월 21일]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는 헌신의 기쁨 (대하 24:1-14) | 최종운 | 2026-03-20 | 30 | |
| 2922 | [3월 20일] 왕이 오실 길을 준비하라 (대하 23:16-21) | 최종운 | 2026-03-19 | 27 | |
| 2921 | [3월 19일] 7년의 기다림, 마침내 왕이 나타나다 (대하 23:1-15) | 최종운 | 2026-03-18 | 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