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종교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화려한 제사입니다. 예식입니다.
동양, 서양, 고대, 근대 할 것 없이 예식은 그 종교의 권위를 과시하는 도구였습니다.
그에 비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언약의 말씀, 특별히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십계명 이후부터의 세부 설명서에 해당하는 20:22-23:33은
제사를 간소하게 하라는 가르침과 절기에 대한 몇 줄짜리 주문이 다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정의로운 삶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대놓고 정반대의 방향이라니, 어떻게 보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정의로운 삶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습니까?
모든 것 위에 우선하는 하나님의 뜻은 바로 생명 그 자체입니다.
생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개인과 가정과 공동체의 존속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3절) 송사, 재판할 때의 기준입니다. 크게 다섯 가지입니다.
(1) 가난한 자들에게 부당한 판결을 하지 말 것 (2) 거짓 고발을 멀리할 것
(3) 죄 없는 사람이나 의로운 사람을 죽이지 말 것 (4) 뇌물을 받지 말 것 (5) 이방인을 억압하지 말 것 등입니다.
성경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사회법에서도
사법 체계의 공평성은 그 사회의 지속 여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됩니다.
쉽게 이야기해 봅시다. 법은 사회 구성원 사이의 공통된 약속입니다.
이 약속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사회는 오래 지속됩니다. 간단합니다.
그러나 이 약속이 누군가에게는 곧이곧대로 적용되면서,
힘 있는 사람에게는 슬그머니 사라진다면 결코 그 사회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수많은 혁명과 반란과 전쟁, 사회적 무질서가 그 증인입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호소할 길은 법밖에 없는데
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법으로 기술을 부리고 장난을 칩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하는 일이 오늘날에도 벌어집니다.
이러면 부당함을 느끼는 사람들의 불만이 계속해서 쌓일 것이고
그 불만은 결국 폭발해서 사회체계 자체를 뒤집어엎어 버릴 것입니다.
생명을 지키고 개인과 가정과 공동체의 존속을 무엇보다도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이런 지점을 그냥 넘어가실 리가 없습니다. 송사만을 위해서 따로 법 조항을 만드십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공평한 송사를 위해 위증을 금지하십니다.
1절 거짓된 풍설... 2절 부당한 증언은 모두 십계명의 아홉 번째 계명,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20:16)”를 위반한 것이며
억울한 피해자를 고의로 발생시키는 죄입니다.
풍설(風說)로 번역된 단어는 단순한 거짓말이 아닙니다.
여론과 재판을 조작하기 위해 악의적이고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퍼뜨리는 행동입니다.
위증(僞證)도 마찬가지입니다.
위증한다고 하는데 왜 악인과 연합한다고 합니까?
위증의 목적 자체가 특정인에게 유리하도록 하기 위함인데, 그 증언조차도 거짓 아닙니까?
나에게 유리할 수 있다면 거짓이어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악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법정의 재판장이십니다. 그렇기에
1절 악인과 연합하여... 2절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고... 3절 편벽되게 두둔
하는 것은 재판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2절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
율법은 다수를 따라 악한 길을 걷는 것을 금합니다.
다수가 동의한다고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중의 변덕 때문에 얼마나 많은 억울한 일이 벌어졌는지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대표적인 희생자 아닙니까?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구원자라고 외치던 군중이
일주일 만에 돌아서서 그를 죽이라고 소리 지르다니, 얼마나 대단한 변덕입니까?
그들은 그 피를 그들과 그들 자손에게 돌리라(마 27:25)고 호기롭게 소리 지릅니다.
때론 사람은 자신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가만히 보면 그 말은 무서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옵니다.
장담은 그것을 감당할 능력과 자신이 있을 때 하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분간을 못하기에 늘 사단이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궁극적으로 대중의 생각을 주도할 것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나 대중이 곧 하나님은 아닙니다.
3절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지니라
재판은 빈부귀천에 관계없이 공의롭게 시행되어야 합니다.
본문의 경고는 재판의 기준을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 두지 말라는데 있습니다.
율법은 인간의 창작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기에
뇌물이나 권력 뿐 아니라 동정이나 연민으로도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게 적용되어야 하고, 모든 판결은 하나님이 공의로우신 것처럼 공의로워야 합니다.
4절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5절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그것을 버려두지 말고 그것을 도와 그 짐을 부릴지니라
이런 부분은 율법의 급진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고대 근동의 많은 사회에서는 원수나 적에게 해를 가하지 말라, 혹은 동등하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정도의 법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해를 가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어려움이나 곤경에 처한 원수나 적을 도와주어야 온전히 충족됩니다.
출애굽 공동체가 진정한 의미에서 언약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아
일반 세상의 법과 도리를 훨씬 뛰어넘는 더 높은 수준을 지향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런 사회에서는 7절 거짓 일을 도모하거나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는,
즉 공평성이 훼손된 송사가 결코 용납될 수 없습니다.
8절 뇌물을 받지 말라 9절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고 적용해야 하는 율법입니다.
우리를 통해 세상은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묻는 것은 우리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입니다.
법정에 설 일이 없는 우리에게도 날마다 작은 송사의 자리가 있습니다.
누군가에 대해 말을 옮길 때, 다수의 의견에 그냥 편승할 때,
내게 유리한 쪽으로 사실을 살짝 구부릴 때, 약한 사람보다 힘 있는 사람의 편을 들 때,
우리는 이미 그 작은 법정의 증인석에 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자리의 재판장이십니다.
오늘 하루, 내 말과 판단이 가난한 자에게는 공평하게,
미운 자에게는 선하게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침묵해야 할 거짓 앞에서 침묵하고,
말해야 할 진실 앞에서 말하는 하루가 되게 해주시기를 구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
저희의 말과 판단이 많은 이들의 생명과 맞닿아 있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다수의 소리에 떠밀려 진실을 외면하지 않게 하시고,
힘없는 이들 앞에서 비겁하지 않게 하시며,
미워하는 이에게조차 선을 행할 용기를 주소서.
오늘 저희의 삶을 통해 세상이 주님을 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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