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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2일] 사람이 소나 양을 도둑질하여 잡거나 팔면 (출 22:1-15)
 
[10월 12일] 사람이 소나 양을 도둑질하여 잡거나 팔면 (출 22:1-15)
2026-10-12 00:00:00
손병호
조회수   36

 

 

1절 사람이 소나 양을 도둑질하여 잡거나 팔면...5절 사람이 밭에서나 포도원에서 짐승을 먹이다가...6절 불 놓은 자가...7절 사람이...9절 어떤 사람이...10절 사람이...

우리가 3천 년 전 이스라엘 사람으로 살았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요?

우리도 소나 양을 길렀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밭이 있기도 했을 테고

누군가는 포도 농장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농사를 짓는다고 밭에 불을 놓을 수도 있겠지요.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서는 당시 백성들이 당연히 접했을 법한

일상적인 순간들이 꼼꼼하게 나열되고 있습니다.

사람이...사람이...사람이...가 반복됩니다. 이 ‘사람’은 우리가 아는 명사 ‘사람’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 그 누구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소리입니다.

말씀을 읽으실 때 여러분의 이름을 한번 넣어보셔도 됩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의 자동차를 폐차할 정도의 사고를 냈다든지,

유용하게 쓰던 컴퓨터나 태블릿을 고장을 냈다든지, 가구를 망가뜨렸다든지,

실수로 집이나 사무실을 잿더미로 만들었다든지 생각해 봅시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철렁하지 않습니까?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느낌이 확 오지 않으십니까?

 

출애굽기 21장부터 23장까지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을 위한 규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지만

구원이 그런 위대한 이야기, 엄청난 사건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구원받은 백성답게 삶의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그 구원의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적용해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21장부터 23장은 십계명의 해설서이며 적용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해설서의 초점은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내가 ‘내 이웃을 어떻게 배려하고 사랑할 수 있는지’입니다.

인간의 삶은 관계 없이, 이웃 없이는 불가능하기에

대부분의 율법은 인간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특별히 15절까지의 오늘 말씀에서는 배상한다는 단어가 계속 반복해서 나옵니다.

이 문단의 핵심은 죄지은 사람을 벌주자, 가 아니라 피해자에게 보상을 하자. 입니다.

(심지어 율법서에서는 누구를 감옥에 가두자는 말도 나오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율법의 정신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사람은 그렇지 않지요. 누군가에게 분풀이해서 한 사람을 짓밟아야 속이 시원합니다.

책임자를 찾아야 한다, 끌어내려라,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 얼마나 살벌한 말들입니까.

문장만 보면 살벌해 보이는데 우리는 이런 맥락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합니다.

혹은 이런 결정을 대단히 무감각하게 합니다.

 

결국 책임을 지워야 된다는 말 아닙니까? 사람을 바꿔야 한다는 말 아닙니까?

그 사람 갈아치워서 무엇이 변했습니까? 혹은 변할 것 같습니까? 결국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내 속 편하고 내 속 시원하고 끝입니다. 겨우 그것 하자고

누군가의 삶을 짓밟는 = 죽음의 방향을 향해 달려가는 죄인의 속성입니다.

 

가장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곳은 아파하는 이들입니다.

가해자를 어떻게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피해자를 챙기는 것입니다.

 

3절 도둑은 반드시 배상할 것이나 배상할 것이 없으면 그 몸을 팔아 그 도둑질한 것을 배상할 것이요

물론 피해자가 가해자보다 중요하다고 해서 가해자가 아무래도 상관없다. 가 아닙니다.

‘몸을 팔아서라도 반드시 배상해라!’

도둑질을 통한 이익은 용납할 수 없다는 하나님의 선은 명확합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쉬운 죄는 바로 도둑질입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아랫사람이기에 피할 수 없는 계명입니다.

당신의 그 시간은 윗사람의 시간입니다. 혹은 섬겨야 하는 대상의 시간입니다.

당신이 임의대로 마음대로 쓰는 것은 도둑질입니다. 근무 태만은 도둑질입니다.

태만한 아랫사람들 또한 심판의 대상입니다.

고용주라고, 윗사람이라고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까?

약자라고 무조건 보호 대상이고 강자라고 무조건 백안시하는 이분법 또한 희한합니다.

하나님은 악으로부터 자기 백성 전체를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그들 또한 하나님의 보호의 대상입니다.

 

도둑질이 왜 악입니까? 남의 것을 동의 없이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며,

땀 흘리지 않고 얻고자 하는 것이기에 악입니다.

누군가를 섬기시는 여러분, 당신이 마음대로 하는 그것, 고용주와 상의가 된 내용입니까?

여러분의 행위를 고객이 알게 되었을 때 무사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까?

내가 아무렇지 않게 슬쩍하는 그것, 정말 내 땀과 직결된다는 떳떳함이 있습니까?

하나라도 걸린다면 당신의 행동은 도둑질입니다.)

 

율법이 도둑질에 대한 배상을 대폭 강화하는 이유는

도둑질을 원천 봉쇄하고 이웃을 보호하자는 의도이지요.

도둑이 아직 짐승을 산 채로 가지고 있으면

(1절) 이미 도살했거나 팔아버린 상황과 비교해서

(4절) 두 배만 보상하라는 것은 독특해 보입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또 반복입니다. 율법의 기본적인 취지는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 규모를 제한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도둑이 가지고 있는 짐승이 아직 살아있기 때문에,

다시 돌려받을 주인에게 짐승이 이미 처분된 상황보다는 적은 보상을 준 것입니다.

 

도둑이라 할지라도 기본적인 인권은 보호하라는 것이 율법의 정신입니다.

(2절) 누가 누군지 쉽게 분별할 수 없는 밤에 도둑질하다가 주인에게 죽임을 당한다면

주인에게 살인죄가 적용되지 않으나

(3절) 날이 밝은 때에 도둑질하다가 주인에게 죽임을 당한다면

주인이 과도한 힘을 사용했다고 간주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도둑이어도 생명은 소중한 것이기에 죽여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통해 행위 자체가 아니라 사람에 집중하십니다.

 

5절 자기의 짐승을 놓아 남의 밭에서 먹게 하면...6절 불이 나서...밭을 태우면

율법은 과실과 사고를 분명하게 구분합니다.

과실 - (5절) 집짐승이 풀려나서 남의 밭을 망치면

짐승 주인의 밭과 포도원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배상하라고 하지만,

사고 - (6절) 불이 나서 남의 밭을 망치면

불 놓은 자가 (일반적인) 배상을 하는 선에서 그칩니다.

결과가 같더라도 사고, 즉 예방할 수 있는데 조치를 취하지 않아 벌어진 일은

과실일 때보다 더 크게 보상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결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과정과 동기로 판단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든 율법의 방향은 상호 존중입니다.

자기 소유는 소중하게 여기면서 다른 사람의 소유를 가볍게 여김은 잘못입니다.

시대가 과거로 갈수록 강한 자가 약한 자의 것을 힘으로 빼앗고 짓눌렀습니다.

그것이 당연한 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법은 이미 수천 년 전에 신분에 상관없이

서로의 생명과 재산을 존중하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시대를 초월한 위대한 사랑의 정신입니다.

 

8절 도둑이 잡히지 아니하면

돈이나 물품을 이웃에게 맡겼는데 이웃이 그것을 도둑맞은 경우도 있다고 하십니다.

이럴 일이 과연 얼마나 벌어질까, 싶은데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고는 터졌는데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경우입니다. 억울한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럴 때 율법이 가리키는 방향을 봅시다.

이 부분에서의 핵심은 함부로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0절 짐승을 이웃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다가 죽거나 상하거나 끌려가도 본 사람이 없으면

도둑이 잡히지 않는다면 맡았던 사람이 보상할 의무가 없었습니다.

여기서의 핵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분쟁이 생기고 인간관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막는 것이 최종목표입니다.

 

11절 배상하지 아니하려니와...13절 배상하지 아니할지니라...15절 배상하지 아니할지니라

이 말씀은 물건 맡은 사람이 분쟁에서 아무 책임도 없다는 식의 무책임한 말이 아닙니다.

주고 받고의 보상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말이지요. 그것은 바로 관계의 지속입니다.

공동체 전체의 존속입니다.

 

하나님 믿는 우리에게 있어서 말씀은 내 삶의 기준입니다. 그 기준이 가리키는 방향은

- 결과가 아닌 동기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 서로의 생명과 재산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공동체가 존속하는 것입니다.

결국 모두를 살리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내가 정말 말씀을 기준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내 삶의 기준은 사람을 살리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 내가 재판관이 되지 않게 하시고 말씀이 재판관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의 마음이 나의 마음이 되게 하셔서

나의 결정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결정이 되게 하소서.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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