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에 대하여]
15장 1절은 ‘이 후에’라고 시작합니다.
14장에서 전쟁포로로 끌려간 조카 롯을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의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살렘 왕이면서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댁에게 바칩니다.
반면, 소돔 왕이 전리품을 주겠다고 하지만
자신의 것으로 취하지 않겠다고 거절하며 마무리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보시기에 흠 없었던 아브람이지만,
오늘 본문에서 보았듯 그에게 유일한 흠이 한 가지 있었는데,
아들이 부재였습니다. 75세가 이미 넘었고(12장),
내일 보겠지만 창세기 16장에서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 86세라고 하니,
아브람 입장에서 볼 때 조급한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은 결정적인 후손이 없다고, 실패한 인생이라고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아브람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람 자신은 남들이 다 있는 아들이 없음에 한탄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순간,
스스로를 실패한 인생이라 여기며
무너져 있는 아브람에게 친히 임재하십니다.
아브람은 아들의 부재만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정작 그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들이 없는 그 자리에, 그의 전부가 되어주시는
하나님께서 이미 함께하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그것을 깨닫기를 원하셨고,
그 임재 자체가 곧 축복임을 선언하시기 위해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은 스스로를 아무것도 없는 인생이라 여깁니다.
우리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촛불 하나를 켜면
금새 밝아지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촛불이 온 방을 비추면 안 보이던 주변의 것들을 다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없다 말하던 아브람에게 촛불처럼 찾아와주시고
그의 전부가 되어주십니다.
아브람은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임한 하나님께서
1절에서 그의 방패,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그 약속보다 중요한 것이
임재입니다. 1절에서 말씀이 환상중에 아브람에게 임했다고 합니다.
임재 이전의 아브람의 생각은 이러했습니다.
아람이 하나님께 원망했습니다.
자식이 없으니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에게 내 대를 잇게 해야 겠다는
소리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모르면, 아브람과 같이
눈에 보이는 세상의 방식을 모색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의 선택을 하겠다는 아브람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브람을 꾸짖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 임재를 지금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아브람이 80이 넘도록 하나님의 임재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백 번 양보해서 75세에 부름 받아 하란을 떠났고
그 때에도 하나님이 임하셨는데 이 사건이 자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때 처음 느꼈다고 쳐도 지금 5-10년의 시간동안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는데
그런 아브람이 아직 모릅니다.
그러면, 아브람을 미련하다 여길 것인가 라고 생각해보면,
아브람이 그래도 믿음의 조상인데,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는데도 이정도면,
우리는 어떠한가? 라고 질문해 볼 수 있습니다.
아...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 하더라도,
모태신앙이며 평생 하나님만 믿어 왔다고 하더라도,
어쩌면 우리가 이렇게 임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임재를 경험하면서도 그것을 임재로 알아채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가? 라고 합리?적인 생각으로 결론을 맺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연약함을 하나님께서는 너무나도 잘 아셔서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해하시며 기다리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 앞에 선다는 것은,
단순히 글자를 읽는 행위가 아닙니다.
성령님을 의지하는 기도로 시작하여,
말씀을 펼쳐 들고 눈으로 읽고 입으로 고백하며
귀로 듣는 그 순간순간이, 곧 하나님께서
내 삶에 친히 임재하시는 시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의 생각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으로 조정되는가]
아브람의 생각은 이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아들을 안주시니 자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믿을 만한 사람인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아야하나,, 라며 마음에 결론을 내린 듯 합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자신의 생각을 환상 가운데
말씀으로 임하신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인간의 생각은 하나님이 다 아시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 생각을 듣기 원하시고,
하나님 역시 자신의 뜻을 나누시길 원하십니다.
이어서 하나님의 응답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4-5절입니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생각을 듣게 된 아브람은
이 대화를 통해 아,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뜻이
훨씬 좋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자신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뜻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조정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내 삶에 적용되려면 이러한 대화가 필요합니다.
이제 아브람의 삶은 하나님이 책임지는 인생이 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삶의 방향성으로 삼는 우리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의심을 어떻게 확신으로 바꾸시는가]
8절,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는 소유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는지 질문합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뜻을 신뢰할 좀 더 확실한 무언가를 원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9절에서 아브람에게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와
10절. 모든 것을 반으로 쪼개고 마주 댄” 상태에서 기다리게 하십니다.
기다리다 지친 아브람은 잠이 들었는데, 그 때 하나님께서는
13절, 아브람의 자손들이 400년간 이방 땅에서 종살이를 할 것이며,
14절, 이후에 하나님께서 그 땅을 징벌하면서 탈출하게 된다.
15절, 아브람 너는 조상들 품으로 돌아가며,
16-21절, 약속받은 땅으로 자손들이 돌아와서는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자손을 주십니다. 400년간 타국살이를 하고
약속해주신 땅을 허락해주신다는 약속을 미리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이것을 반드시 지키시겠다는 언약의 증거로
17절, 어두움 가운데 횃불이 나타나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납니다.
18절,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십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고대 근동지방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세운 약속이 법적 효력을 갖도록 하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동물을 반으로 잘라 양 쪽에 배치하고 두 사람이 그 사이를 걸어 지나갑니다.
그 사이를 지날 때 피로 물든 통로를 지나게 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만일 이 언약을 어기면
저 잘린 동물과 같은 운명에 처해도 좋다는 맹세의 행위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오늘 이 언약식에서는 언약의 두 당사자 모두가
피로 물든 길을 걷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그 길을 지나십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께서 언약 의식에 의해 스스로 약속에 묶이시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자신의 말씀을 이루지 못할 경우 죽임 당한 동물의 운명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약속의 짐을 혼자 지십니다.
연약하고 언제든 포기 할 수 있는 아브람에게 그 짐을 지게 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절대 언약이면서 동시에 절대 은혜입니다. 절대 구원의 길입니다.
오직 아브람은 이 언약을 선언해주신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그 영원한 언약의 희생 제물이 되신 독생자 예수님의 은혜를
우리가 알고 믿어 구원받았습니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이 임재하신다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은혜로 가득한 삶임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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