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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일자 2020-08-01
설교자 오덕호

2프로 부족한 여호사밧

(대하 19:1-3; 315, 524. 2020. 8. 1[] 전교인월삭새벽기도회)

 

 

8월 첫날을 맞아 전교인월삭새벽기도회로 모인 성도님들 가정과 주님께서 세우신 서울산정현교회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기 바랍니다.

 

여러 해 전에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산다는 제목의 책이 나왔었습니다. 이 말이 맞는 말입니까? 맞는 말입니다. 인간이 타락한 후 모든 사람은 저주 아래 있습니다. 모든 가계에는 저주가 흐릅니다. 우리는 그 저주를 끊어야 삽니다.

 

어떻게 그 저주를 끊을 수 있습니까?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 끊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모든 저주가 끊어집니다. 그런데 나 혼자 예수님을 믿으면 가계의 저주가 끊어집니까? 아닙니다. 믿지 않는 가족은 여전히 저주 아래 있습니다. 그래서 가계의 저주를 끊으려면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주를 끊으려면 예수님을 믿는 것 외에 더 해야 할 게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모든 저주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 완전히 끊어집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양자가 되어 저주는 완전히 끊어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 속에 삽니다.

 

그러나 아까 소개해드린 책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도 여전히 가계에 저주가 흐르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가계의 저주를 끊기 위해 뭔가 해야 하는 것처럼 말합니다. 이것은 완전히 틀린 것입니다. 이 책이 나온 후 한 동안 많은 사람이 읽었지만 목사님들과 신학자들이 이런 오류를 잘 지적해줘서 이제는 성도들이 가계에 흐르는 저주라는 말을 별로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잘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에게 너희 가문에는 저주가 흐르고 그 저주가 너에게도 흐르고 있으니 그 저주를 끊기 위해 기도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저주는 기도로 끊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믿는 믿음으로 끊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완전히 저주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로마서 8:1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정죄함이 없으면 저주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일부 성도는 자기에게 저주가 흐르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삶을 고치지 않아서 벌을 받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악을 행하면 벌을 받습니다. 이 벌이 저주입니까? 아닙니다. 성도를 바로잡아주는 축복입니다.

 

예를 들어, 남을 비난하는 버릇이 있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완전히 저주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 버릇이 남아있어서 남을 비난하면 하나님의 벌을 받습니다. 이것은 축복의 벌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약한 성도는 벌을 저주로 착각합니다. 이것은 오해입니다. 성도가 받는 벌은 축복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진리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을 받아도 죄를 지으면 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악을 행해도 벌하지 않고 넘어가실 때가 있습니다. 벌을 안 주셔도 악을 떠나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악을 행하면 벌을 주시는 경우도 많습니다. 벌을 받아야 우리가 회개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회개해도 벌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악을 행했는데 벌을 받지 않으면 주위 사람들이 악을 행해도 되는 줄 알고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이웃을 바로잡아주기 위해서 우리에게 벌을 주실 때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악을 행하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며 악을 멀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알려주기 위해 우리의 악행에 대해 벌을 주십니다. 우리가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을 받아도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나 그 벌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입니다. 우리는 그 벌을 통해 삶을 고치고 더욱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며 구원의 길을 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윗 가문에 큰 은혜를 내려주셨습니다. 다윗 가문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선택된 가문으로서 저주가 흐르는 가문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중에도 악을 행하는 자는 벌을 받습니다. 심지어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윗 가문이 저주를 받아서 그런 게 아닙니다. 축복을 받아서 벌도 받는 것입니다.

 

다윗의 후손들도 부족한 인간이라 죄를 짓고 벌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다윗 자신도 살인죄와 간음죄를 짓고 무서운 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회개하고 삶을 고쳐 하나님의 축복 속에 말년을 지내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후손 중에는 벌을 받은 사람이 많습니다. 자기만 벌을 받은 게 아니라 후손에게도 벌을 끼친 경우가 많습니다. 솔로몬은 자기 악행 때문에 나중에 나라가 갈라져 후손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아사는 처음에 좋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았지만 말년에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떠났다가 비참하게 죽고 맙니다.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은 자기 악행 때문에 나중에 온 나라와 후손이 하나님을 떠나고 큰 벌을 받습니다. 이것은 선조의 악행 때문에 후손이 벌을 받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저주가 아니라 악행을 고쳐주시는 축복입니다. 다윗의 후손은 벌을 통해 회개하고 다시 믿음의 자리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을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믿음이 좋은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며 큰 복을 받았습니다. 역대하 17:3-4입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 이는 그가 그의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께 구하며 그의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라

 

여호사밧은 우상을 제거했습니다. 방백들과 레위인들을 유다 모든 성읍에 보내 율법을 가르치게 했습니다. 그래서 나라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크게 부강해졌습니다. 이렇게 부귀영화를 얻었을 때 여호사밧은 북 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과 혼인관계를 맺습니다. 이 악행으로 여호사밧은 자신도 벌을 받고 후손에게도 큰 고통을 주게 됩니다.

 

여호사밧은 아합 가문과 혼인관계를 맺은 것 외에는 아주 믿음이 좋은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여호사밧은 아합의 권유로 아합과 함께 아람을 치러 갔습니다. 이때 여호사밧은 선지자를 불러서 하나님께 여쭤보자고 했습니다. 아합이 선지자들을 부르니 400명의 선지자가 아합이 전쟁하면 이길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여호사밧은 이상하게 생각하고 다른 선지자를 찾습니다. 그래서 참 선지자인 미가야가 와서 아합이 전쟁에 나가면 죽을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여호사밧은 거짓 선지자를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이 상당히 좋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건도 있었습니다. 아합이 죽은 후 모압 왕이 이스라엘을 배반합니다. 그러자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여호사밧에게 부탁하여 함께 모압을 치러 갑니다. 이들은 에돔의 도움까지 받아 이스라엘 왕, 유다 왕, 에돔 왕이 연합군을 만들어 모압을 치러 갑니다. 그러나 군대에 물이 모자라 연합군이 멸망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여호사밧이 근처에 여호와의 선지자가 없느냐고 묻습니다. 선지자 엘리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세 왕이 엘리사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을 보고는 도와주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왕이 엘리사에게 간청하자 엘리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열왕기하 3:14입니다.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의 왕 여호사밧의 얼굴을 봄이 아니면 그 앞에서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여호사밧 덕에 엘리사의 도움을 받아 연합군은 대승을 거둡니다. 여호사밧은 엘리사도 인정한 훌륭한 신앙인이었던 것입니다.

 

여호사밧의 믿음을 잘 보여준 또 다른 사건은 브라가 골짜기의 승리입니다. 암몬, 모압, 마온 사람들이 연합해서 유다를 침략했습니다. 여호사밧은 온 나라에 금식을 선포하고 백성과 함께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합니다. 그러자 선지자 야하시엘이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해주실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다음 날 아침에 여호사밧은 전쟁하러 나가는데 찬양대에 예복을 입혀서 군대 앞에 가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합니다. 찬양이 시작되자 하나님의 역사로 모압, 암몬, 세일 거민은 서로 공격하여 자멸하고 맙니다. 유다 백성은 멸망한 적군에게서 전리품만 가져왔는데 전리품이 너무 많아서 3일 동안 가져옵니다. 유다 백성은 하나님을 송축하며 그곳을 브라가 골짜기라고 부르게 됩니다. 여호사밧은 이렇게 믿음이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여호사밧이 이렇게 믿음이 좋은 왕이라면 후대에 큰 덕을 끼쳐야 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여호사밧은 후대에 큰 해를 끼쳤습니다. 한 가지 악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 악이 뭡니까? 자기 아들 여호람의 아내로 아합의 딸 아달랴를 맞아들인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며 가까이 한 것입니다. 이 죄 때문에 여호사밧의 후손은 거의 멸족을 당하게 되고 나라도 큰 해를 입게 됩니다.

 

왜 여호사밧이 아합과 혼인관계를 맺었을까요? 여호사밧은 남 유다 왕입니다. 그런데 북 이스라엘이 두려워서 북 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과 정략결혼을 한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나라의 평안을 누가 줍니까? 하나님이 주십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아합과 가까워져서 평안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하나님 대신 아합을 믿은 것입니다.

 

어떻게 여호사밧이 이런 악을 저질렀을까요? 두 가지 이유 때문인 것 같습니다. 첫째, 눈앞에 보이는 사람의 권세를 두려워한 것입니다. 아합은 옆 나라 왕이고 군대도 강합니다. 금방 유다를 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합을 두려워하며 의지한 것입니다.

 

둘째, 정치외교는 그렇게 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이런 정치외교의 선조가 누구입니까? 솔로몬이지요. 여호사밧은 솔로몬을 보고 자기도 정략결혼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싶어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정략결혼으로 세상의 부귀를 얻었지만 후손에게는 큰 해를 끼쳤습니다. 여호사밧도 정략결혼 때문에 가문과 나라에 큰 해를 끼친 것입니다.

 

여호사밧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큰 복을 받은 것은 우리에게 귀중한 모범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더 중요한 교훈이 되는 것은 신앙생활을 잘한 사람도 이런 실수 하나로 자신과 후손과 나라에 큰 해를 끼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사밧에게서 바른 신앙을 배울 뿐 아니라 그 이상으로 이런 악을 행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여호사밧은 아합을 가까이 하며 함께 전쟁터에 나갔다가 자신이 죽을 위험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때는 여호사밧 자신이 신앙생활을 잘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특별한 도우심으로 간신히 위기를 벗어나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합 가문의 영향으로 여호사밧의 후손이 죄를 짓고 망하는 것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은 아합의 딸인 아달랴가 부인이라 그 영향을 받아 악한 왕이 됩니다.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는 어머니인 아달랴의 영향으로 악한 왕이 됩니다. 아하시야는 아합의 아들 요람과 가까이 지내다가 북 이스라엘에서 예후가 반란을 일으켜 요람을 죽일 때 아하시야도 거기 있다가 예후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아달랴는 자기 아들 아하시야가 죽은 것을 알고는 자기가 왕이 되려고 아하시야의 자손을 모두 죽입니다. 오직 아하시야의 1살짜리 막내아들 요아스만 살아남습니다. 여호사밧은 아합의 딸을 며느리로 맞았다가 가문이 처참하게 망한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나라는 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겠습니까?

 

여호사밧이 아합과 사돈을 맺은 것은 하나의 작은 잘못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을 “2% 부족한 여호사밧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여호사밧은 작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그게 악한 자와 가까워지는 악이었습니다. 그렇게 악한 자와 가까워졌더니 가문과 나라에 이렇게 큰 해를 끼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잘못도 저지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다니엘처럼 하나님 앞에서 조금의 흠도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결단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그래도 우리는 죄를 지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만은 정말 하나님 앞에서 흠 없는 사람이 되려는 마음으로 가득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작은 악도 최대한 피해야 합니다.

 

특히, 악한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악한 사람을 가까이 하는 죄를 가장 짓기 쉬운 것은 결혼과 동업입니다. 여호사밧은 북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기 위해 악한 자와 혼인관계를 맺었다가 큰 해를 당했습니다. 삼손은 정욕 때문에 들릴라를 사랑했다가 큰 해를 당했습니다. 악한 사람과의 결혼이나 동업이나 동맹은 정말 위험합니다. 악한 사람의 영향을 받아 죄를 지을 위험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악한 사람과 결혼하거나 동업하기 쉽습니다. 인간적인 욕심 때문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인간의 매력과 부귀영화에 욕심을 부리면 우리는 결혼이나 동업을 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인간적인 모습만 보고 불신자를 가까이 하면 큰 해를 당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불신자와의 결혼이나 동업을 포기한다면 하나님은 더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주시고 더 큰 축복의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여호사밧처럼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속에 살 수 있기 바랍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이 인간적인 생각으로 아합과 혼인관계를 맺어 큰 해를 당한 모습은 두려운 마음으로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와 가까이 지내지 말고 오직 하나님 안에서 결혼과 동업을 하여 항상 하나님의 축복 속에 좋은 열매를 맺는 복된 성도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통성기도는 당분간 자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대표로 기도하겠습니다. 다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1) 우리가 항상 하나님만 믿고 섬기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속에 살게 해주소서. 2) 인간적인 욕심으로 악한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고, 믿음 안에서 결혼과 동업을 하여 해를 당하지 않게 해주소서. 3) 우리교회가 올바른 교회가 되게 해주소서. 환우들과 교회 나오지 않는 성도들의 건강과 믿음을 회복시켜주소서. 4) 우리나라를 지켜주시고 특별히 자유와 정의를 세워주소서. 5) 코로나19를 퇴치해주시고, 북한동포를 구원해주시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들과 어려운 교회들과 선교사님들을 도와주소서. 교회학교의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에 큰 은혜를 내려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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