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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일자 2020-03-26
설교자 박현덕

55. 공평과 정의의 하나님은 약한 자를 품어주십니다

(27:1-11 찬송 393. 2020. 3. 26[]. 새벽기도회)

 

하나님은 두 번째 인구조사를 통해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조직체계를 강화하셨습니다. 이 인구조사에는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의 정신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구수의 비율에 따라 기업을 결정하셨습니다. 땅 분배의 공정성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지파 수가 많은 사람들은 많은 땅을, 상대적으로 적은 지파는 적은 땅을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살게 될 땅의 위치는 지파의 힘과 상관없이 제비뽑기를 통해 결정하게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정의와 공평의 정신이 이스라엘을 세우는 근간이 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함께 살펴보게 될 본문의 사건도 이러한 정신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인구조사가 끝난 후에 슬로브핫의 딸들이 모세와 제사장인 엘르아살과 온 회중이 보는 앞에서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의 호소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광야에서 죽었으나 여호와를 거슬러 모인 고라의 무리에 들지 아니하고 자기 죄로 죽었고 아들이 없나이다. 어찌하여 아들이 없다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그의 종족 중에서 삭제되리이까. 우리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소서(27:3-4).”

 

다시 말해서 지금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여인들의 아버지인 슬로브핫이 비록 광야에서 죽고 말았지만, 하나님을 배반한 적도 없고 많은 사람들이 고라일당에 가담하여 반역을 행했을 때에도 그 무리에 들지 않았으며, 다만 첫 번째 세대와 같이 자기 죄로 죽게 된 것인데, 대를 이을 아들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여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들은 단지 땅을 차지하고 싶은 욕망만 가지고 이러한 호소를 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녀들의 마음에는 아버지의 이름이 그들의 종족 가운데 그대로 보존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만약 땅을 분배받지 못하면 결국 그 지파에서 아버지의 이름은 사라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모세는 이들의 호소를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가부장적 분위기가 강했던 이스라엘 사회의 관습 상, 이 여인들의 호소는 충분히 무시되거나 아니면 오히려 훈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이 문제를 들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 그녀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호소합니다. 모세로서는 슬로브핫의 딸들이 아버지의 땅을 상속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에 대해 답을 줄 수 있을 만한 전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임의대로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께 그 문제를 가지고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슬로브핫의 딸들의 말이 옳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 슬로브핫의 땅을 그 딸들에게 넘겨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만약 딸이 없으면 그 기업을 그 형제에게 주어야 하고 형제도 없으면 그의 기업을 그의 아버지의 형제에게 주어야 하며, 그 아버지의 형제도 없으면 그의 기업의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주도록 하셨습니다.

 

이처럼 슬로브핫의 딸들의 요구는 이스라엘의 가부장적인 관습을 새롭게 개혁하는 전기를 마련합니다. 다시 말해서 슬로브핫의 딸들은 오로지 남성만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다고 하는 정통적인 가부장적 사회에 저항한 것입니다. 또한 그녀들은 자신들의 억울함을 합리적인 방법으로 호소했습니다. 즉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긍정적인 답을 얻은 겁니다.

 

무엇보다도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된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이 당시에 여성은 약자의 신분이었습니다. 사람 수를 세는 계수에서도 제외되기 일쑤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전통적으로 강력한 가부장적 사회였던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를 거부하십니다. 대신 힘없는 여성의 권리에 손을 들어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공평과 정의를 실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해질 당시 우리가 겪어야 했던 시대적 상황도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아주 강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특별히 선교사들이 이 땅에 들어와 복음을 전하는데 이 점이 너무도 큰 장애물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어렵게 여인에게 복음을 전했다 해도 남자들이 모여 있는 교회당에는 차마 나오지 못했습니다. 남녀유별이라는 전통이 아주 강했던 나라에서 어떻게 남녀가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단 말입니까? 그래서 결국 여성들을 위해 따로 예배처소를 마련했고 선교사 부인이 주로 그들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례와 같은 의식이었습니다. 여성들이 세례를 받기는 받아야겠는데, 남자 선교사들에게 얼굴을 내밀고 세례받기가 참 민망했던 겁니다. 그래서 결국 소위 휘장세례라고 일컫는 예식을 거행하기까지 했습니다. 즉 방 가운데 휘장을 치고 머리 하나 내놓을 만하게 구멍을 낸 후에 그곳으로 머리만 내밀어서 물을 머리 위에 얹어 세례를 베푼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1895년 이북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전삼덕 성도님이 세례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서서히 복음은 이러한 남녀차별의 금기를 허물기 시작했습니다. 여필종부(女必從夫), 남존여비(男尊女卑)와 같은 봉건적 사회 구조 속에서 여성은 너무도 미약한 존재였고 힘없는 백성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연약한 여인들을 통해서 교회를 세워나가셨습니다. 실제로 교회를 통해서 근대의 신여성이 등장하게 되고, 여자대학까지 세워지지 않았습니까? 슬로브랏의 딸들은 비록 관습과 제도 속에서 소외받은 자들이었지만, 연약한 자, 힘없는 자, 나약한 자의 호소에 귀 기울이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품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높여주셨고 그들의 권리를 보장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이 개선되어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 땅은 불평등적인 요소가 많은 게 현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도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되며, 약자라고 해서 억압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결코 양육강식의 논리에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지금 있는 자리에서부터 불평등의 문화를 개선해 나가고, 또한 투표권의 행사를 통해서도 왜곡된 문화가 바로 잡힐 수 있도록 힘을 보태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놓고 교회가 기도하며 지역을 섬겨야 합니다. 개혁은 교회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개혁정신은 세상을 향해 뻗어나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질 수 있기를 소원하며 힘을 보태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다시 한 번 땅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앞으로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의미는 하나님으로부터 땅을 선물로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이 정당한 노력으로 그 결과물로 얻게 되는 소유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차지하게 될 땅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 본문은 슬로브핫의 여인들의 탄원을 통해서 땅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레위기 2523절 말씀입니다.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그렇다고 해서 땅의 소유권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땅에 대한 소유권을 합법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죠. 그러나 적어도 기독교인은 땅 투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투자와 투기를 구별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필요해서 땅을 소유했는데, 그 땅의 값이 올라가는 것을 투기라고 보기 어렵겠죠. 하지만 땅을 통해서 손쉽게 많은 이득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투기입니다.

 

무엇보다도 땅이 하나님의 것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내가 땅의 주인이라고 해서 교만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아 잘못된 관습과 제도를 개혁해 가고, 이 땅에 살면서 소유 때문에 마음상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 주신 선물임을 깨달아 그 복을 누릴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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