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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일자 2020-03-25
설교자 박현덕

54. 하나님의 보호 속에 악습을 버리고 새사람이 되십시오

(26:52-56 찬송 310. 2020. 3. 25[]. 새벽기도회)

 

출애굽을 하게 된지 40여년이 지났을 무렵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압 평지에서 두 번째 인구조사를 실시했습니다. 민수기의 처음을 등장한 첫 번째 인구조사는 이스라엘이 광야생활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식을 위해서였습니다. 또한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인구조사를 하고 하나님께 말씀을 받은 후에 나팔소리와 함께 가나안 땅을 향해 전진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가나안 땅 목전에 도착해 모압 평지에서 두 번째 인구조사를 하게 된 겁니다. 이 인구조사의 목적은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정복하고 땅을 효과적으로 분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따라서 이 인구조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새로운 소망을 품게 되는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즉 그들 눈앞에 보이는 가나안땅을 소유하고 그곳에서 이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게 될 소망을 품는 일이었습니다. 두 번째 인구조사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처음 인구조사를 했을 때 계수된 사람들이 아무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곧 패역과 불평만을 일삼았던 구세대의 퇴장이요, 이제 새로운 공동체의 출발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번째 인구조사를 살펴보면 전체가 601730명이 계수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처음 이스라엘 백성이 인구조사를 했을 당시 603550명보다 1820명 정도 감소한 것입니다. 이걸 통해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의 전적인 보호하심이 함께 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광야가 어떤 곳입니까? 뜨거운 태양, 물과 식량이 태부족하고 일교차 도 극심할 뿐만 아니라 타민족의 침입 등 결코 안정적으로 살 수 없는 척박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많은 수의 민족을 광야에서 먹여 살리셨습니다. 메추라기와 만나를 내려 주셨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타민족이 쳐들어올 때 하나님이 직접 그들을 물리쳐 주셨고, 발람왕처럼 저주를 선포하려고 할 때 하나님은 저주를 축복으로 바꿔 놓으셨습니다. 물이 필요할 때 물을 주셨습니다. 도저히 인간이 마음 편하게 살만한 곳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인구가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을 통해서 이러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참 편안하게만 지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들은 많은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불편함을 감소해야 했고, 그들이 죄를 지을 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어렵고 힘든 삶이 반복되다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망각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또 죄를 짓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모든 과정을 돌아보면 , 우리가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이 함께 했기에 가능했구나라는 고백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광야는 결코 힘들기만 한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체험하는 장소였습니다. 실제로 광야생활 중에 이스라엘은 몰라보게 강한 민족으로 거듭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두 번째 인구조사는 이미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미래의 희망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이 그저 그들이 기대하는 환상의 세계가 아니라, 실제로 정복하게 될 곳, 그들이 정착해서 살게 될 땅으로 다가오는 결정적인 전기가 마련된 것입니다. 물론 이런 소망이 그들의 소망이 되려면 반드시 우상숭배와 같은 악을 버려야 합니다. 지금 인구조사를 행하고 있는 모압 평지에서 그들은 음행과 우상숭배라는 큰 죄를 지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은 악습을 몸에 지닌 채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우상숭배와 같은 악습을 단절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섬기는 순전한 신앙정신으로 무장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두 번째 인구조사는 공평과 정의를 실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각 지파들에게 인구수에 비래해서 가나안 땅을 분배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즉 인구의 수가 땅 분배가 가장 기본적인 기준이 되었던 것입니다. 52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 명수대로 땅을 나누어 기업을 삼게 하라. 수가 많은 자에게는 기업을 많이 줄 것이요, 수가 적은 자에게는 기업을 적게 줄 것이니 그들이 계수된 수대로 각기 기업으로 주되 오직 그 땅을 제비뽑아 나누어 그들의 조상 지파의 이름을 따라 얻게 할지니라.”

 

이처럼 하나님은 땅 분배의 공정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수가 많은 지파는 아무래도 많은 땅을 차지하고 상대적으로 수가 적은 지파는 적을 땅을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들이 뿌리를 내리게 될 땅은 지파의 크기에 상관없이 제비뽑기를 통해서 결정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 앞에 순종을 기본으로 하며 공평과 정의를 실현하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도 메추라기와 만나를 골고루 내려주셨습니다. 비록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이제 그 땅에서 나는 식물을 먹게 될 거라서 메추라기와 만나를 더 이상 내리지 않으시겠지만, 그 정신만은 그대로 계승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실 때 잘사는 자와 못사는 자를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지파의 수가 많고 적다는 것으로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지 않으셨고 모두에게 필요한 만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해서도 서로 시기하거나 다투지 말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서로 협력하고 영적으로 하나 된 거룩한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물론 역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된 이후, 이런 하나님의 뜻을 충실히 따랐다고 증언하고 있지 않습니다. 결국 그 땅에서도 양육강식의 논리가 지배되는 아픔을 겪습니다. 왜 한참 후에 다윗 왕이 인구조사를 실시했을 때 하나님께서 싫어하셨습니까? 그것은 다윗왕이 인구조사를 통해 자신이 얼마나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지 자랑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두 번째 인구조사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를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합니다. 힘이 드는 시간이 있습니다. 지칠 때도 있습니다. 낙심될 때도 있고 죄를 지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를 보호하십니다. 이 믿음이 우리 인생의 토대를 이룰 때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의 소망을 붙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에게 광야는 저주의 장소가 될지 몰라도, 하나님의 백성에게 광야는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하심을 경험하는 축복의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과거의 구습을 버려야 합니다. 에베소서 421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 가운데 광야의 여정을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저 참고 인내하는 정신을 키우시기 위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옛 사람을 벗어 던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새사람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이제는 세상적인 가치관이 아니라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이 되면 어떤 결과를 낳습니까? 결국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는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쓸데없이 경쟁하지 않습니다. 공평과 정의를 실현하고자 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으로 서로 섬기며 사는 것입니다. 비록 이 세상에 양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한다 해도 우리는 그 늪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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