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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자 2020-10-19
설교자 박현덕

6. 하나님은 부족한 나를 통해서도 역사하십니다

(4:4-10 찬송 546. 2020. 10. 19()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지만, 정작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서 계속 죄를 지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죄의 뿌리는 너무나 깊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보다 우상에게 더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분별력을 잃어만 갔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그들을 되돌리시려고 심판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2절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다고 전합니다. 여기서 파셨다는 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과거에 이스라엘은 애굽 땅에서 노예신세였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물론 그 자유에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깨뜨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또 다시 이방인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종이 되게 하고 학대받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파셨다고 말씀했던 겁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너무도 가슴 아픈 일이었고, 이스라엘 백성 입장에서는 너무도 수치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파셨고, 이스라엘은 20년 동안 갖은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또 다시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드보라를 선택하셨습니다.

 

드보라는 여 선지자였습니다. 또 재판관이었고, 랍비돗의 아내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녀를 이스라엘을 구원할 네 번째 사사로 임명하셨습니다. 이 점은 참 흥미롭습니다. 이 전에도 하나님은 장자의 가문이 아닌 옷니엘을 첫 사사로 세우셨습니다. 장애를 가졌던 에훗을 사사로 세우셨고 우상숭배 집안의 자손인 삼갈을 사사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여성을 사사로 세우셨습니다. 당시 강력한 가부장적인 체계가 지배하던 시대를 감안할 때 이 역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그분의 종을 택하시는 방식은 인간의 상식과 전통을 넘어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약한 자를 들어서 자칭 강하다 하는 자들,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역사는 오직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십니다.

이렇게 사사로 부름 받은 드보라는 하나님께 받은 소명대로 바락을 불러들여 그를 전쟁사령관으로 임명하면서 그에게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전쟁을 치를 것을 명합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그의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셨느니라(4:7).” 이처럼 드보라는 바락에게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끄실 것이라는 확신에 찬 축복의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바락이란 이름의 뜻은 번개, 그는 용사였습니다.

 

하지만 바락은 즉각 순종하지 않고 머뭇거렸습니다. 그러면서 드보라에게 이렇게 제안합니다.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아니하겠노라(4:8).” 한마디로 이것은 바락의 믿음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 전쟁에 함께 하실 것이라는 드보라의 말을 들었으면서도 이 전쟁의 승리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드보라가 동행하게 함으로써 그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려고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기보다, 뭔가 자신의 눈에 보이는 표징을 통해서 승리의 확신을 갖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드보라는 바락에게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9절 말씀입니다. “이르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번에 가는 길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가데스로 가니라.” 이처럼 드보라는 바락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바락에게 이 전쟁을 통해서 그가 영광을 얻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바락이 죽여야 했던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는 다른 사람의 손에 죽었습니다. 바락과의 전쟁 중에 시스라가 급히 도망쳐서 겐 사람 헤벨의 아내인 야엘의 장막에 몸을 숨겼었는데, 그 때 야엘이 시스라가 깊이 잠든 틈을 타서 장막 말뚝을 시스라의 관자놀이에 박아서 그가 죽게 된 것입니다. 결국 바락은 시스라가 이미 여인의 손에 죽은 장면만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세 명의 인물을 택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먼저 사사 드보라였습니다. 그녀는 당시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인의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드보라의 장점은 자신이 맡은 사명을 충실히 잘 감당했다는데 있었습니다. 그녀는 사사로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사들처럼 직접 자신이 무기를 들고 전쟁에 나가 싸울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신 그녀는 바락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그 장수가 이스라엘을 구원하도록 촉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로 하나님께 택함 받은 바락은 전쟁에 나가는 것을 주저하고 망설였습니다. 그는 남자였고 장수였지만, 그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의외의 행동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그는 여인인 드보라에게 의존하려고 했습니다. 이미 앞에서 살펴본 옷니엘과 에훗, 또한 삼갈과 비교하면 그는 정말 형편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택하신 세 번째 종인 야엘은 어떻습니까? 야엘 역시 여인이었습니다. 그것도 이방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시스라를 바락이 아닌 야엘의 손에 맡기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녀를 통해서 이 전쟁에 마침표를 찍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드보라, 바락, 야엘, 이 세 사람은 모두 뭔가 하나님으로부터 쓰임받기에는 사회적 배경으로나, 개인적인 성향이나, 신앙심이나, 어떤 것도 제대로 만족감을 주는 인물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습니까? 드보라와 야엘은 여성이었습니다. 더구나 야엘은 이방인 출신 여성이었습니다. 물론 여성이라는 것 자체가 부족함을 보여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당시 사회적 배경에서 볼 때 그렇다는 뜻입니다.

 

다음으로 유일한 남성인 바락은 여성인 드보라와 야엘보다 더 겁 많은 인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 전쟁에서 싸운 인물은 바락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락에게 명령을 내린 사람은 드보라였습니다. 14절 말씀입니다.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넘겨 주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에 앞서 나가지 아니하시느냐 하는지라. 이에 바락이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가니.”

 

이처럼 드보라가 바락에게 전쟁에 나가라고 명했고, 또 드보라가 바락에게 하나님께서 너보다 먼저 앞서 가실 것이라고 격려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시스라를 죽인 사람은 야엘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이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을 놓고 볼 때는 뭔가 불완전하고 부족한 점이 있지만,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에는 사사로 부름 받은 드보라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락이 아무 쓸데 없는 존재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야엘은 어떻습니까? 어떻게 보면 그녀는 갑자기 불쑥 등장한 의외의 인물이었습니다. 여인이면서도 인간적으로 보면 아주 치밀하고 잔인하기까지 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하나님은 이 세 사람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으로 이끄시지 않으셨습니까? 23절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이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굴복하게 하신지라.” 이 점은 우리에게 격려가 되면서도 도전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약점이 있습니다. 부족한 면이 있죠. 나는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 자체가 교만입니다.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완전함을 기대하는 것도 교만한 행동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사람조차 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치러진 전쟁의 진정한 주인공은 오직 하나님 뿐이신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에는 어느 누구도 주인공의 자격이 주어져 있지 않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여호수아도, 다윗도, 바울도, 어느 누구도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대신 우리는 하나님의 도구일 뿐입니다. 따라서 어느 누가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누가 일을 더 많이 하고, 더 큰 권력을 행사하고, 어떤 업적을 남겼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자신이 맡은 자리를 잘 지키고 하나님의 뜻을 잘 이루어 드리려고 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우리는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바락도 보십시오. 처음에는 드보라의 말을 듣고 전쟁에 나가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는 뭔가 보이는 표징이 필요했고, 드보라가 자신과 동행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야엘을 통해서 시스라가 죽임을 당한 것을 눈으로 목도하고서야 , 정말 하나님께서 이 전쟁 가운데 함께 하셨구나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만약 바락이 처음부터 확신을 가지고 전쟁에 나갔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겸손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관대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대충해도 되고, 무조건 용납하고 받아줘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드보라를 보십시오. 그녀는 전쟁에 나가기를 주저하는 바락의 요청에 따라 자신도 그를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분명 바락에게 힘을 돋우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러면서도 드보라는 바락의 문제점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래서 바락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하나님께 온전한 쓰임 받을 수는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부족함도 용납하되, 서로가 더 믿음이 자랄 수 있도록 격려하고 때로는 바른 길과 방법을 권면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드보라와 바락, 야엘을 통해서 이들의 부족함과 약점을 아시면서도 적재적소에 그들을 투입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믿음으로 행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이웃을 나보다 낮게 여기며, 주님 앞에서 서로 협력해서 주님께 기쁨을 드리는 사역을 할 수 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