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누구인가? ‘골리앗도 무너뜨린 믿음의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선 ‘사탄의 충동’에 넘어갑니다.
역대상 21장은 어떤 내용인가 하면,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다가 큰 재앙을 겪는 내용입니다.
1절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이스라엘 인구를 계수하는게 왜 문제일까요?
고대 사회에서 인구조사를 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세 가지였습니다.
전쟁 대비 : 싸울 수 있는 병력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기 위함
세금 부과 : 몇 명이 사는지,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야 세금을 걷을 수 있음
행정 효율 : 지역별 인구를 파악해서 나라를 조직적으로 운영하기 위함
겉으로 보면 다 그럴듯한 이유입니다.
사탄이 다윗의 무엇을 충동질했을까?
내가 했다. 교만함이다.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보다
“내가 얼마나 강한 나라를 가지고 있는가,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인구조사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보다 자기가 이룬 이 업적을 보고 싶었다.
하나님보다 눈에보이는 이 군사력을 더 붙들고 의지하는 마음을 불지핀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각자 마음 속에는 나름의 “안전 기준선”이 있습니다.
이 정도 예금은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집은 있어야 한다.
노후 준비는 어느 정도는 되어야 한다.
자녀는 이런 수준까지는 가줘야 한다.
계획을 세우고, 재정을 관리하고, 노후를 준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무 계획도 없이 사는 것이 믿음은 아닙니다.
준비는 해야 합니다.
문제는 “그 준비의 중심에 누가 앉아 계신가”입니다.
준비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신가?
아니면 “내 불안과 두려움”이 중심에 있는가?
숫자보다, 하나님을 더 의지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보시면.사탄은 언제 우리의 마음을 흔드냐?
역대상 20장을 보면 다윗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동서남북으로 확장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가는 곳마다 승리하고, 주변 나라들이 조공을 바치고, 이스라엘의 이름이 높아집니다.
말 그대로 “황금기”입니다.
바로 우리가 약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강해졌다고 착각할 때,
은혜를 잊고 내 자랑이 자라날 때
왕의 자리에 앉아 있는 자신에게 도취될 때
사탄은 그때 틈을 파고듭니다.
늘 깨어서 겸손하게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의지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이어서 보시면 이 인구조사를 하는 일에 누가 말리나?
요압이 말립니다
3절 요압이 아뢰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 배나 더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이 백성이 다 내 주의 종이 아니니이까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령하시나이까
요압이 누구입니까? 완고하고 폭력적인 장군입니다.
잔인하고, 자신의 정치적 계산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요압이 더 영적으로 깨어 있습니다.
요압이 보더라도, 다윗이 지금 이 인구조사를 왜 하는지가 보여졌다는 것이다
인구조사가 행정이 아니라 교만에서 나온 것이다.
이 결정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지금 다윗은 들리지 않는다.
4절 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하니라.
이미 마음이 기울어진 것이다.
영적 전쟁은 마음에서 벌어집니다.
보이지 않는 우리 마음안에서 일어나는 전쟁이 진짜 전쟁이다.
한번 사단에게 마음을 빼앗기면
말씀의 분별력도 잃어버리고, 내 생각과 기준이 옳다고 여기게 된다.
결국 7절을 보면,
“하나님이 이 일을 악하게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
하나님이 악하게 보셨다…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의 문제, 교만의 문제를 죄로 여기셨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행동’보다 ‘마음’을 먼저 보십니다.
그래서 징계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 다윗의 마음에 깨달음이 찾아옵니다.
8절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하나 얻습니다.
다윗의 위대함은 한 번도 안 넘어진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 제일 먼저 하나님께로 가는 사람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넘어졌느냐”가 아니라
“넘어진 뒤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입니다.
자기를 합리화하는가, 핑계를 대는가, 남 탓을 하는가 아니면 곧바로 하나님께 엎드리는가
하나님은 갓 선지자를 보내 징계의 세 가지 선택지를 제시합니다.
① 3년 기근
② 3개월 동안 대적에게 쫓김
③ 3일간 여호와의 전염병
이 세 가지 중 무엇이 가장 무섭습니까?
사실 어떤 선택을 해도 인간에게는 고통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선택이 무엇인지 보십시오.
13절 “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빠졌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니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가장 덜 아픈거 고르겠습니다. 그게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하나님이 때리시 회초리에는 하나님의 긍휼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때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회초리를 드실때가 있다.
맞을 때 아프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실 때는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그속에는 긍휼과 사랑이 있다.
우리를 다시 세우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사랑의 표현이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일하십니다.
우리가 넘어져도 방관하시는 분 아니다.
말씀으로 훈계하시고, 때로는 징계하시면서 다시 세우시고
우리가 잘못 가도 돌이키시는 은혜를 주시는 분이시고,
우리가 엎드리면 다시 은혜의 문을 여십니다.
하나님의 채찍 끝에는 항상 회복이 있다.
하나님의 징계 뒤에는 늘 은혜가 기다린다.
오늘 새벽, 이 말씀을 붙드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징계하실지라도 우리를 버리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여러분, 혹시 오늘 마음이 무너졌습니까?
기도가 막혀 있습니까?
관계가 깨져 있습니까?
영적으로 둔해져 있습니까?
그 자리에서 도망치지 말고
오늘 다윗처럼 하나님께 엎드리십시오.
하나님은 재앙 속에서도 은혜의 문을 여시는 분입니다.
징계 속에서도 회복의 기회를 만드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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