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를 묵상하면서
계속해서 핵심 내용을 기억하면서
묵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이 세상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 그분의 백성으로 사는
영적인 지조를 지키는 것이 곧 나의 신앙이며
그 모습이 세상에 드러날때에는
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형상이
보여지는 것을 내가 갈망해야 합니다.
이제 베드로 사도는 서신을 마무리하는 내용으로 채워가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다다를수록 중요한 이야기들, 핵심이 기록됩니다.
정말 이것만큼은 꼭 기억하고 지켜내기를 바라는 것들입니다.
본문에서 악으로 내 삶에 해를 입히는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리고 선을 행하는데도 고난 당하는 성도들을 위해
위로와 도전의 메시지를 나눕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을 통해 저와 여러분의 삶이
주님을 닮고, 하나님의 자녀로 승리하는 삶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1. 더 큰 은혜, 더 큰 복을 주시고자 부르신 자들(8-12)
베드로 사도는 가정에서의 관계를
건강하게 세우는 권면에 이어서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 성도가 취해야 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우리가 모든 일들에서나 관계 속에서
큰 어려움 없이 모든 것이 생각하고 계획한대로
흘러가고 마음의 평안함이 있을 때에는
누군가를 축복하는 일, 누군가에게 사랑을 나누는 일이 어렵지 않습니다.
이렇게 마음의 평안함이 있을 때에는
사실 누군가 딴지를 건다든지, 나에게 안좋은 말을 하더라도,
크게 요동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냥 그런가보다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이 복잡하고,
눈 앞에 상황이 말이 아닐 때에
나의 이런 모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악담을 하고, 욕을 하고, 비난만 하며 손가락질 한다면
그 마음을 평안한 상태로 되돌리는 일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리고 나를 향해 온갖 부정적인 시선과 말들로
흔드는 사람을 향해 좋은 마음 가지는 것이 어디 쉽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베드로 사도는 나의 마음을 성도들과 연합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기를 권면합니다.
나에게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되갚아주지 말고
오히려 그를 향해 축복의 메시지를 나누라고 합니다.
즉, 복수(復讎, 원수에게 되갚아주는)가 아닌,
복수(福授, 복을 주는)하는 자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우리를 향해 악한 행위를 하고,
우리를 모욕하고, 저주하더라도,
우리는 선한 행위로 돌려주고,
긍휼히 여기고, 축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마음 다해 기쁘게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참 많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를 향해 이토록 기쁨으로 그것을 온전히 주시려는
통로가 되신 분이 바로 주님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받은 사랑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아직 주님을 만나지 못한 저들을 향해
축복할 수 있는 자격을 받은 자라는 것을
우리의 삶으로 보여주고, 삶에서 주님을 발견하도록 사는 삶이
우리에게 하나님이 허락해주시는 더 큰 은혜,
더 큰 복이라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기을 원합니다.
우리 자신이 스스로가 심판자가 될 수 없습니다.
심판자는 언제나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참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정말
복된 길을 걷는 것인지 우리의 마음을 가다듬고
한 번만 더 생각해보면 하나님께 맡길 수 있다는 것이
은혜라는 것을 저와 여러분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와 복을 온전히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고난을 받을 때도 주님의 길을 가는 자들(13-22)
이제, 베드로 사도는 좀 더 나아가
선을 행하는 우리에게 고난이 찾아올 때에
우리는 그 고난을 어떻게 대하며,
고난의 의미 해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합니다.
그리고 나아가 나라는 존재는
누군가의 선한 의도와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돌아보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마음 다해 축복하고
선한 일을 하려고 애쓴다 해도
세상은 여전히 우리에게 딴지를 걸어옵니다.
우리의 선한 의도를 왜곡하며, 심지어 우리를 박해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길을 걷고 있는데 왜 이런 고난이 찾아오는가?
라는 질문을 던질 때,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답하고 있습니다.
14절을 함께 읽습니다.
너희가 만일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위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말씀대로 고난을 복으로 해석하는 은혜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세상의 시각으로만 보면 억울합니다.
피하고 싶은 고통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의를 위하여 고난 받는 그 자리에
“복 있는 자”라고 그분의 백성에게만 주시는 특별한 칭호를 주십니다.
우리의 고난이 지금 주님을 따르는 길 위에 있다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을 우리가 온전히 받고 있음을 믿는
여기서 잠시, 베드로 사도의 권면을
우리 자신에게 스스로 질문해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비방에 대해 선한 양심으로 맛서야 한다고 배웁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선한 의도와 행동을 어떻게 받아 들이고 있는지도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우리의 순수한 믿음을 의심하는 것에 대해서는 분노합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형제 자매나 이웃이 선한 마음으로
베푼 무언가를 과연 선의로 해석하고 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 내로남불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사단은 늘 하나님의 사람들을 어떻게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려고
안달이 나 있습니다.
누군가의 선행을 어떻게든 그 행동 이면에
혹시라도 숨겨진 의도가 있지 않은가? 하며 의심하게 만듭니다.
생각의 흐름을 사단이 잡아채서 악의적인 시선으로 해석하게 왜곡시킵니다.
우리 자신이 이런 사단의 꾐에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생각을, 마음을 끊임없이 하나님께 내어드리며,
눈으로 드러나는 일을 사단이 아닌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끊임없이 돌아보고 하나님께 그 마저도 맡겨드림으로
흔들리지 않기를 원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 흔들리지 않는 성도가 되도록 15절에서 그 힘의 근원을 제시합니다.
15절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우리의 삶의 중심이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모셔놓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우리의 상황과 감정에 우리의 결정을 맡기지 않고
주님께 맡겨 드리는 것이 주님을 모신 사람의 결정입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절대 평안의 마음으로 단지 선한 양심과 선한 행실로
고난을 대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떤 감정이나 논쟁에 휩쓸리지 않습니다.
왜 이런 일이 가능한가요?
18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완전한 대속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이 달리시고 죽으실 때 우리도 함께 죽었습니다.
완전히 해결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우릴 정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세상 권세는 그 주님 발 아래 있을 뿐입니다.
아무리 우리 시선을 빼앗아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할지라도
우리를 결코 주님과 멀어지게 할 수 없음을 우리가 잊지 않기를 원합니다.
결론. 주님과 함께 복을 받은 자로서 담대히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복을 이어받을 자로 부름받았기 때문에 악을 축복으로 갚습니다.
우리는 최종 승리자이신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신 삶이기 때문에,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소망을 선포합니다.
가정에서부터, 직장에서, 그리고 모든 고난의 현장에서,
선한 양심을 가지고 주님을 위하여 담대하게 승리하며,
소망의 이유를 힘차게 선포하며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의 오늘이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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