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함께 붙드는 말씀은 역대상 19장입니다.
앞장 18장에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사방의 승리를 주시며 나라가 견고히 서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19장은 분위기가 확 바뀝니다.
작은 오해가 결국은 큰 전쟁을 불러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그렇지 않습니까?
문제가 큰 데서 터지는 게 아니라
작은 균열에서 터집니다.
조금만 오해 때문에 관계가 무너지고,
하루아침에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런 순간에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 서야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붙드시는지 보여줍니다.
19장은 암몬의 왕 나하스의 장례식으로 시작됩니다.
다윗은 과거 암몬왕 나하스에게 은혜를 받은 적이 있어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위로 사절단을 보냅니다.
그런데 암몬의 관리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3절 암몬 자손의 방백들이 하눈에게 말하되 왕은 다윗이 조문사절을 보낸 것이 왕의 부친을 존경함인줄로 여기시나이까 그의 신하들이 왕에게 나아온 것이 이 땅을 엿보고 정탐하여 전복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 하는지라
이 왜곡된 해석이 다윗의 선의를 공격으로 바꿔버렸습니다.
그리고는 4절을 보십시오.
하눈이 이에 다윗의 신하들을 잡아 그들의 수염을 깍고 그 의복을 볼기 중간까지 자르고 돌려보내매
고대 사회에서 수염은 권위의 상징입니다.
그 수염을 절반이나 잘라버린 건 아주 치욕적이고 모욕을 주는 행위입니다.
결국 이 행위는 사절단만 모욕한 게 아니라 다윗을 모욕한 것이고,
이스라엘을 모독한 행위 입니다.
그리고 이 태도는 전쟁이 일어나도 불가피함을 의미합니다.
보세요. 이렇듯 서로안에 신뢰가 무너지면 결국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가정도, 교회도, 직장도, 인간관계도
신뢰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어두워집니다.
여러분, 혹시 여러분 마음 안에도 이런 오해의 렌즈가 있지 않습니까?
사실보다 내 감정이 먼저 앞서고,
상대보다 내 상처가 앞을 가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새벽에는 하나님 앞에 나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굳은 마음, 내 상처가 있다면 주님앞에서 풀려주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야 관계도 살고, 우리의 일상도 회복됩니다.
암몬은 이내 자신들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이스라엘이 군대를 동원해서 자신들을 치러오거든요.
그제서야 급하게 하는 행동은
자기들 힘으로 이길 수 없으니 용병들을 돈으로 사들인다.
7절 곧 병거 삼만 이천대와 마아가 왕과 그의 군대를 고용하더니 그들이 와서 메드바 앞에 진 치매 암몬 자손이 그 모든 성읍으로부터 모여와서 싸우려 한지라
아람과 돕 등 용병 3만 3천 명을 돈으로 사들였다.
자기들이 뿌린 대로 거두고 있는 것이다.
다윗은 암몬과의 불가피한 전쟁에서 누구에게 이 일을 맡기냐면...
군대장관인 요압에게 맡겼습니다.
전쟁이라는 것은 항상 생사가 걸려있기에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아무리 전쟁에 이골이 난 군대장관이라 할지라도
언제 어디서 죽을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자 아마 요압의 동생인 아비새도
암몬의 군대의 숫자와 그들이 준비한 전략을 보면서 두려움이 밀려왔나봅니다.
그러나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은 이 모든 상황 앞에서 믿음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13절 너는 힘을 내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힘을 내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요압안에 어떻게 이런 담대한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는가?
역대상 18장에서 그가 다윗을 지켜보면서 경험한 것이 있다.
매번 수적인 열세에도, 어려움이 있어도, 전쟁의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다.”
요압은 전쟁의 한복판에서
수없이 하나님의 개입을 보아온 사람입니다.
말로만 믿는 게 아니라 실제로 전쟁터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낀 사람
수없이 죽을 뻔하면서도 살아 나온 사람
자신의 능력과 군사력으로는 승리가 안 된다는 걸 깨달은 사람
거기서 요압의 담대함이 길러진 것이다.
책에서 배운 믿음이 아니라 살아남아서 얻은 믿음입니다.
여러분의 믿음도 그렇지 않습니까?
책에서 배운 믿음이 아니라 살아내면서 얻은 믿음 아닙니까?
병들었을 때 흔들렸을 때 실패했을 때 억울했을 때
고통 속에서 버티며 기도했을 때
아무 희망 안 보이는데도 말씀 붙들고 걸었을 때
그때마다 하나님이 여러분 붙들어주시지 않았습니까?
그 경험이 지금의 담대함이 되는 것입니다.
그 경험이 누군가를 살리고, 누군가를 지지하고, 세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요압은 동생 아비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암몬이 네게 강하면 내가 너를 돕고
아람이 내게 강하면 네가 나를 도우라.”(12절)
믿음의 공동체는 이렇게 서로 돕는 것입니다.
나 혼자 다 이기라고 하지 않습니다.
서로 붙잡아줍니다. 서로 세워줍니다.
오늘 우리 산정현공동체가 서로를 위해 ‘함께’ 싸우고 함께 돕는 공동체 되길 바랍니다.
이제 아람이 다시 큰 군대를 모아 요단 동편에 진을 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도 어떻게 싸웠는지, 내용이 안나온다.
그냥 아람사람도, 암몬자손도 도망갔다.
다윗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자,
아람이 깨닫습니다.
“암몬과 손잡는 건 우리에게 손해다.”
19절 하닷에셀의 부하들이 자기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였음을 보고 다윗과 더불어 화친하여 섬기고 그 후로는 아람 사람이 암몬 자손 돕기를 원하지 아니하였더라
사람들이 연합해서 아무리 세력을 키워가고,
사람들이 아무리 악을 도모해도
하나님이 “여기까지다” 하시면 끝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적들이 강해보이고, 때로는 적들이 연합해서 나를 공격하기도 하고,
그속에 객관적으로 이길 승산이 하나 없다해도
하나님이 끝내시면, 끝납니다.
다윗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를 예표합니다.
하나님나라를 대적하려는 연합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의 백성이 흔들리지 않고 믿음으로 싸울 때,
하나님이 친히 그 연합을 끊어버리십니다.
그들의 힘, 그들의 수, 그들의 강함이 영원할 거 같지만
그 모든 연결을 하나님이 끝내신 거예요.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해와 상처의 시대에서
하나님의 사람은 ‘신뢰’로 서야 합니다.
담대함은 경험에서 옵니다.
어제도 나를 붙들어주신 주님이
오늘도 붙드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악의 고리를 끊으시고
승리의 길을 여십니다.
여러분,
이 새벽에 담대함을 회복하십시오.
그리고 오늘 만나는 사람들에게
“담대하십시오.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실 것입니다.”
오늘도 이 믿음의 선포가, 여러분 가정의 분위기를 바꾸고,
직장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오늘 하루의 길을 바꿀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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