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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8일]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벧전 1:13-25)
 
[11월 18일]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벧전 1:13-25)
2025-11-18 00:00:00
손병호
조회수   17

 

 

우리는 어제 본문에서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영혼구원이라는 산 소망,

살아 능력을 끼치는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도 베드로를 만났습니다.

(1:8) 그 하나님을 바라볼 때 (육안으로) 보지 못하는데도 기뻐할 수 있는,

말세를 살아가는 능력이 됩니다. 사도는 계속해서 교회를 권면합니다.

 

(13)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허리를 동인다, 허리띠를 동인다는 것은 무엇인가 행동할 준비를 하는 모양새를 말합니다.

 - 첫번째 유월절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리에 띠를 띠고 식사를 하라고 명령하셨고

 - 엘리야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합의 마차보다 더 빨리 달려갈 때 허리를 동였고

 - 하나님께서 욥 앞에 나타나실 때도 남자답게 허리를 동이고 일어서라하십니다.

 - 예수님께서도 최후의 심판 말씀을 하시며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고 하십니다.

 

우리식으로 말하지면 팔을 걷어붙인다,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제대로 달라붙어서 열심히 하기 위해 준비하는 모양새입니다.

그만큼 마음가짐을 단단히 하라는 말입니다. 굳은 각오이며 결의입니다.

근신(謹愼)입니다. 졸지 말고 정신을 차리라는 말입니다.

몸가짐, 마음가짐을 단단히 하라는 말은 일이 곧 임박했음을 말합니다.

1시간 뒤, 하루 뒤, 1년 뒤에 벌어질 일인데 벌써 단단히 준비하지는 않습니다.

종말은, 하나님의 구원의 날은, 은혜의 날은 정말로 임박했다는 사도의 절절한 심정입니다.

 

(13)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은혜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예수님께서 나타나시는 그날 우리에게 수여되는 것입니다.

()을 줄 사람이 생각이 없다면 받을 사람은 아무 것도 받지 못합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반드시 받을 것입니다.

 

은혜를 온전히 바란다는 말은 박해 가운데서도 소망을 확실하게가진다는 말입니다.

소망을 확실하게 가진다는 것은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예수님께서도

- 깨어서 주인이 돌아올 것을 기다리는 신실한 종과

- 술에 취한 채로 무관심하게 지내는 악한 종을 대비해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술에 취한다는 것은 소망이 없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피난처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는 소망 안에서 삽니다. 생생하게 깨어서 주님을 기다립니다.

미래의 은혜는 현재에도 분명히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면 은혜를 주신다는데, 구원을 주신다는데 왜 소망을 확실하게 가져야 합니까?

내가 소망이 없다면, 나에게 근신이 없다면, 각오와 결의가 없다면

상이 설령 주어진다 하더라도 그 상이 나와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상을 받을 소망, 근신하는 자세, 각오와 결의에 대해 먼저 16절을 보겠습니다.

 

(16)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진짜 아들이라면 아버지를 닮지 않았겠습니까명목상으로만 아들이 아닙니다. 실제로 아버지를 닮아야 아들입니다.

사도는 실생활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 사람들과 구별하셨다고 했는데

왜 아직 세상에서 남들과 같이 살게 하십니까? 바로 선교적 목적입니다더욱 거룩해져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명령에 대한 네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14) 첫째, 욕심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15) 둘째, 우리를 부르신 거룩하신 하나님을 본받아야 하며

(17) 셋째, 우리가 이 땅에서 나그네로 있는 이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며

(22) 넷째,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14절부터 보겠습니다.

 

1. (14)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우리가 세상의 쾌락과 욕망에 빠져 있다면 재림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날을 무방비 상태로 맞이할 수 있습니다심판의 날이 구원의 날이 아니라 진짜 심판의 날이 됩니다.

구원받기 이전에는 악한 욕심에 굴복했습니다죄에 대해서 무감각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에 대해 무감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릅니다.

 

(14) 순종하는 자식처럼

욕심대로 살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 쉽지, 마음대로 되는 일입니까?

여기에서 사도는 순종을 말합니다순종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합당한 모습이며 믿음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순종으로 나타나며 거룩한 삶으로 증명됩니다.

 

2.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구약시대에 나타난 거룩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사실 막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우리에게는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구체적으로 거룩한 삶의 모범을 보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있으십니다.

그분을 본받으면 될 일입니다. 몰라서 못했다는 핑계를 댈 수도 없습니다.

 

3. (17)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어제도 말씀드린 것처럼 인간의 실존은 나그네입니다.

우리는 어차피 다시 하나님의 집으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나그네와는 다른 소망이 있는 나그네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두려움일까요?

그 이유는 (17)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고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봅니다. 사람은 겉모습을 봅니다.

- 그 사람이 정말 나에게 충성스럽거나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나에게 쓴소리하고 걸리적거리면 싫어합니다.

- 반면에 상대방의 본심이 흑심이라 하더라도 당장에 내 입맞을 맞춰준다면 좋아합니다내면을 볼 줄 모르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릅니다.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행위대로 심판하십니다.

한 사람의 행위에서 그 사람의 마음이 드러납니다잠시는 속일지 모르나 결국 악을 품고 있는 자는 악을 행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18)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우리가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행동해야 할 이유가 또 있습니다.

우리의 과거를 회상할 때 도저히 경솔해질 수 없습니다.

시조인 아담으로부터 내려온 원죄와 자범죄의 결과는 공허(空虛)입니다. 영원한 죽음입니다.

이 죽음의 세력은 세상의 능력과 가치로는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이루어낸 속죄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진실로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마구 살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기 위해서라도 두려운 마음으로 남은 때를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사도의 웅변입니다.

 

종말이라고 하고, 나그네라고 하고, 두려움이라고 하니까 우리에게 참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도의 마지막 권면은 이 모든 부담을 떨쳐냅니다.

 

4. (22) 마음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하라

우리가 복음을 믿고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녀의 삶을 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이 있기 때문에 따라 할 수 있습니다.

(22) 진리에 순종하기에 영혼이 깨끗해지고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입니다거짓이 없는, 형제를 향한 사랑입니다.

사랑이라고 말은 하지만 세상의 사랑은 얼마나 거짓으로 범벅이 되어 있습니까?

모두 자기 정욕, 자기 의도를 상대방에게 관철하려고 하는인간을 대상(對象)화하는 사랑만 난무하지

거짓이 없는 진실한 사랑은 찾기 힘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23) 거듭났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새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우리의 근원이 아닙니다. 우리의 시작은 썩어질 씨가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입니다.

세상의 것은 언젠가는 죽습니다. 세상의 것은 늘 있지 못합니다.

그러나 세상과 성질 자체가 다른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합니다살아 있고, 항상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나눈 본문 말씀을 놀라울 정도로 잘 요약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복음성가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여서>2절입니다.

이 다음에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 뭐라 말할까 그때에는 부끄러움 없어야지 우리 서로 사랑해

사랑은 말세를 살아가는 능력이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베드로전서 1장을 통째로 꿰뚫어서 요약한 놀라운 가사이지 않습니까? 

 

마지막으로 사도 베드로는 이사야 40:6-8 말씀을 인용합니다.

세상 모든 것은 풀처럼 꽃처럼 사라질 것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세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영원할 것이라는

선지자 이사야의 위대한 선언입니다.

 

그 생명의 말씀, 영원한 말씀을 따라 사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욕심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이 땅에서의 시간을 경건하게 보내며,

이웃을 뜨겁게 사랑하며 종말의 날을 기쁨으로 맞이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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