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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7일]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편지하노니 (벧전 1:1-12)
 
[11월 17일]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편지하노니 (벧전 1:1-12)
2025-11-17 00:00:00
손병호
조회수   23

 

 

오늘부터 우리는 베드로전후서를 묵상합니다. 개요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배경입니다. 초대교회의 지도자인 베드로는

네로 황제의 박해 때문에 소아시아에 흩어진 유대인 그리스도인 신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실루아노(실라)의 도움을 받아 편지를 씁니다.(5:12)

 

교회는 여러 가지 시험으로 큰 근심에 싸여 있었습니다.(1:6)

악을 행한다는 비방을 이방인들로부터 받기도 하고(2:12), 애매하게 욕을 먹거나 부끄러움을 당하기도 했습니다.(3:16)

그러나 지금의 교회가 당하는 박해는 300년 가까운 긴 터널로 들어가는 시작일 뿐입니다.

사도의 눈에 그것이 보이지 않았겠습니까? 너무나 절망적인 어둠이 엄습할 때

사도는 (6) 오히려 크게 기뻐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사도는 고난 가운데 있는 교회와 교인들을 권면합니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이야기보다는 구체적인 삶의 윤리를 언급합니다윤리의 모범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예수의 모범을 따르는 근거를 베드로는 종말론과 하나님의 구원에 두고 있습니다.

 

위의 내용에 따라 베드로전후서의 전체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의를 위해 박해받는 그리스도인에게는 복이 있습니다.

- 고난은 믿음이 자라게 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합니다.

- 하나님께서 주신 영생, 부활에 대한 소망은 고난을 인내하는 힘이 됩니다.

- 왕과 같은 제사장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 고난 중에서도 사랑과 선을 행하면서 은혜를 받은 자답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위의 고난, 인내, 부활, 영생 등의 단어를 잘 기억하시면서 본문을 살펴봅시다.

 

(1) 흩어진 나그네

야고보서 1장을 시작할 때도 우리가 동일하게 본 단어입니다만

흩어졌다라는 말의 원어는 잠시 머무는, 여행하는(오늘날의 언어로 굳이 바꾸자면) 관광비자, 임시 거류증 같은 느낌의 단어입니다.

관광 왔다면서 그 땅에서 아예 살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언제든 떠날 심정입니다.

 

- 집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잠시 머무는, 이라는 단어가 성립합니다.

(지금은 네로의 박해로 인해 슬픔 가운데 흩어져 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 다시 모일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흩어진, 이라는 단어가 성립합니다.

 

사도는 지상의 삶에 집착하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켜 흩어진 나그네라고 합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나그네들입니다그 나라에서 다시 모일 나그네들입니다. 돌아갈 집이 분명하게 있습니다.

갈 곳이 있는 사람과 갈 곳이 없는 사람은 삶의 태도 자체가 완전히 다릅니다.

정처(定處)없이 떠도는 세상의 나그네와 하늘의 나그네는 다릅니다.

어디에서 이 확신이 옵니까?

 

(2) 미리 아심을 따라...택하심을 받은 자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선택하셨다는 사실로부터 옵니다. 왜 선택하셨습니까?

 

(2)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성령께서 거룩하게 하신 = 세상으로부터 구별하신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 즉 구원의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미 선택하셨습니다그 선택은 오로지 구원을 위함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2)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3) 부활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이미 있다는 말입니다. 없는데 겨우 긁어모으는 수준이 아니라 이미 있고, 앞으로 더해지게 될 것입니다.

살아있는 소망입니다. 그냥 소망도 아니고 살아서 움직이는 능력이 있는 소망입니다.

큰 확신입니다. 이 확신을 가지고 우리가 가게 될 종착지는 어디입니까?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썩지 않는다로 번역된 단어는 불멸(不滅)’에 가깝습니다. 앞의 3절에서 말한 부활은

다시 살아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생명을 영원히 누리는 것까지 포함입니다.

(7) 주님께서 나타나실 것이고 우리는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될 것입니다영원한 생명입니다.

 

9절에서 결국으로 번역된 원어는 , 결론, 목표등의 뜻을 지닌 말입니다.

믿음의 결론은, 믿음의 목표는 영혼 구원입니다신앙의 궁극적인 목표가 영혼 구원이라는 당연한 말입니다.

 

문제는 교회 역사상 영혼 구원의 가치를 등한시하는 시도가 끊임없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 영혼 구원을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치부한다든지,

- 정치나 구제, 교육 등의 활동에 더 비중을 둔 시도들입니다.

사회활동 물론 다 좋은 이야기입니다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돕고 가르치고 섬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다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영혼 구원만큼은 교회가 마지막까지 붙잡아야 하는 가치입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아무리 좋은 이야기더라도 결국 세상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영혼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직접 말씀하셨습니다.(16:26)

썩어 없어질 것이 믿음의 목적인 양 이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의 목적은 반드시 영혼 구원입니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여러분이 믿는 그 믿음이 나타날 가능성은 확실합니다. 금보다도 더 불변하는 가치입니다.’ 정도로 직역(直譯)할 수 있습니다.

마치 금이 최고의 금속인 것이 확실한 것처럼 우리가 믿는 믿음이 결국 현실이 된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금이 가치가 있는 이유는 다른 금속에 비해 불변하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우리의 믿음을 금에 비교하고 있습니다만

언젠가는 이 탁월한 비유조차도 폐기 처분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금은 결코 우리가 받을 영광스러운 유업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소망은, 세상의 모든 유업은 언젠가는 사라질, 필멸(必滅)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거듭난 후에 우리가 붙잡은 소망은 산 소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소망은 현실의 모든 고난을 이기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런 놀라운 신앙을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지키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5)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시는 은혜가 있을 뿐입니다.

말세가 시작되고 온 세상이 몸살을 앓습니다그럼에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믿기 때문입니다.

 

(6)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그래서 새로운 세상으로 넘어가는 기대와 소망으로 오히려 충만합니다.

그 기뻐함은 무엇을 보아서 기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눈에 보이지 않는데도 사랑할 수 있음은 믿음으로부터 옵니다.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영혼구원이라는 산 소망살아 능력을 끼치는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 하나님을 바라볼 때 보지 못하는데도 기뻐할 수 있는말세를 살아가는 능력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 능력을 힘입어 세상에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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